이 문서는 지난 1년간 국제 마르크스주의 경향(IMT) 전 조직 차원에서 심도 있게 토론된 끝에, 2018년 7월 말 개최된 IMT 세계대회에서 만장일치로 승인되었으며, 원제는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이질적 계급 사상에 맞선 투쟁』이다. 이 문서의 목적은 마르크스주의와, 한동안 학계 활동가들의 일부 층에 영향을 미쳐 왔으며 오늘날에는 국제 노동운동 내부에서도 반동적인 방식으로 이용되고 있는 일련의 관념론적·포스트모더니즘적 이질 계급 사상 사이에 분명한 경계선을 긋는 데에 있다.
이 문서는 이러한 사상과 방법에 맞선 이론적·정치적 투쟁을 한층 강화할 것을 촉구하는 선언이다.
자본주의의 위기는 현존 사회와 그 가치관, 도덕, 그리고 그 사회가 낳는 참을 수 없는 불의와 억압에 맞선, 깊숙이 자리 잡은 다양한 저항의 흐름을 드러냈다. 사회의 핵심 모순은 여전히 임금노동과 자본 사이의 적대에 있다. 그러나 억압 그 자체는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며, 그 가운데 일부는 임금노예제보다 훨씬 오래되었으며, 더욱 깊은 뿌리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가장 보편적이고 고통스러운 억압 중 하나는 남성 지배 사회에서의 여성억압이다. 이러한 막강한 억압에 맞선 여성들의 반란은 사회주의 혁명을 향한 투쟁 속에서 근본적으로 중요하다. 여성들이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에 전면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한, 사회주의 혁명은 결코 성취될 수 없기 때문이다.
수세기 동안 계급사회의 안정성은 가족, 즉 여성에 대한 남성의 예속이라는 견고한 토대 위에 세워져 온 것이다. 엥겔스가 설명했듯, 이러한 형태의 예속은 자본주의보다 훨씬 오래된 것으로, 가부장제 가족의 등장은 여성이라는 성의 세계사적인 패배를 의미한다.
"남성은 가정에서도 지배권을 장악했다. 여성은 비천한 존재로 전락해 예속되었고, 남성의 성욕을 충족시키는 노예이자 자녀를 생산하는 단순한 도구로 전락했다."
우리가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여타 모든 야만적인 제도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와 가정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남성의 지배와 여성의 피지배적 지위는 이제 의심받고 있다. 여성들은 왜 계속해서 이등 시민의 지위를 감내해야 하는가? 사회와 가정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한 이러한 문제 제기는 혁명적으로 중대한 함의를 지니며, 나아가 자본주의 사회 자체에 대한 혁명적인 문제 제기로 이어질 수 있다.
자본주의의 노쇠한 퇴행은 모든 노동자의 삶의 조건을 심각하게 악화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 부담은 특히 여성과 청년들에게 더욱 가혹하게 전가된다. 수많은 이들이 적절한 일자리와 주거를 얻을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한부모 가정과 그 자녀들은 빈곤과 끝없는 고난 속으로 내몰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머리 위를 덮을 지붕조차 마련하기가 어렵거나 아예 불가능한 상황에 처해졌다. 직장에서 여성들은 임금격차부터 온갖 형태의 괴롭힘과 학대를 당한다. 이러한 상황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 사회의 문명 수준은 그 사회가 여성, 아동, 그리고 노인을 어떻게 대우하는가를 통해 가늠할 수 있다. 이러한 기준에서, 현대 자본주의는 과거의 그 어떤 사회 형태보다 훨씬 덜 문명적이며, 비인간적이고 잔혹하다. 인간 소외와 존엄의 파괴, 인간의 고통에 대한 무관심, 그리고 추악한 이기주의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수준에 이르렀다.
자본주의 사회의 퇴행은 여성에 대한 폭력이 만연하는 현실에서 가장 적나라한 형태로 드러난다. 인도, 파키스탄,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의 나라에서는 전례 없는 규모의 납치, 강간, 살인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는 스스로를 문명사회라 자처하는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전 세계에서 여성과 아동을 대상으로 한 유사한 참상이 자행되고 있는 이러한 현상은 전복될 만큼 썩어 문드러진 체제가 앓고 있는 병을 보여 주는 역겨운 증상들이다.
여성이 느끼는 소외와 불의, 억압이 점점 커지기 시작하며, 여성들 사이에서는 현존 질서에 맞선 광범위한 저항 운동이 성장하고 있다. 특히, 불의한 체제 아래에서 자신들이 겪는 차별과 억압, 굴욕에 대해 타오르는 분노를 느끼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수백만 명의 여성들이 각성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진보적이며 혁명적인 현상으로, 우리는 이를 최대한의 열의를 갖고 지지하며 진심으로 환영해야 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전적으로 여성의 완전한 해방을 지지한다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 점에 대해서는 조금의 주저도, 모호함도, 의심도 없어야 한다. 우리는 모든 수준에서 여성에 대한 억압에 맞서 말뿐이 아니라 행동으로 투쟁해야 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이 문제가 계급투쟁이라는 일반적인 범주 안에 종속될 수 있는 부차적인 문제라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 여성들이 만약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사회주의 승리 이후까지 자신들의 권리를 위한 투쟁을 미루려 한다고 믿게 될 경우, 그것은 마르크스주의의 대의에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나아가 그러한 주장은 전적으로 거짓이며,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악의적인 왜곡일 뿐이다.
여성(과 다른 성들)의 완전한 해방은 계급 없는 사회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회 역시 자본주의를 혁명적으로 전복해야만 건설될 수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여성들에게, 그들이 당면한 절박한 요구를 뒤로 미룬 채 사회주의가 도래하기를 잠자코 기다리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자본주의 아래 전진을 쟁취하기 위한 일상적 투쟁 없이는 사회주의 혁명의 승리를 결코 상상할 수 없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아래에서 노동계급의 생활수준을 개선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가장 작은 개혁이라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 여기에는 두 이유가 있다. 첫째, 우리는 노동자들을 착취로부터 보호하고, 생활수준, 민주적 권리, 그리고 문명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을 수호하며, 야만에 맞서 문화와 문명을 지키기 위해 투쟁한다. 둘째이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노동계급은 일상적인 투쟁의 경험을 통해서만 자신의 힘을 자각하고, 조직적 역량을 발전시키며, 역사가 요구하는 수준까지 집단적 의식을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종파주의자들과 교조주의자들이 늘 그래 왔듯이, 노동자들에게 “혁명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일상적인 요구를 제쳐 두라고 요구하는 것은 어리석음의 극치이다. 그러한 태도는 우리를 완전한 무기력과 고립으로 내몰 뿐이며, 그런 길에서 사회주의 혁명은 영원히 실현될 수 없는 신기루로 남게 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성의 권리 신장을 위한 투쟁, 반동적인 남성우월주의에 맞선 투쟁, 그리고 사회·정치·경제 모든 영역 내 진보적인 개혁과 완전한 평등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은 모든 진정한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근본적인 의무이다.
2018년 3월 8일, 스페인에서 여성운동이 지닌 거대한 혁명적 잠재력을 보여 주는 사건이 벌어졌다. 파업 호소에 여성과 남성 전부 합해 약 530만 명이 호응했으며, 스페인 전역에서는 수십만 명이 시위에 팜가했다. 이 거대한 움직임은 분명 페미니즘의 기치 아래 이루어졌지만, 페미니즘만이 존재했던 사건은 아니었다. 이 시기에 연금 수급자들 또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움직임은 동시에 다양한 사안을 둘러싸고 스페인 사회에 축적되어 온 거대한 불만 여론을 반영한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이 운동의 핵심은 임금 격차, 가정·직장·교육 현장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괴롭힘, 가사노동의 부담 등 여전히 여성 억압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쟁점들이었다. 이러한 문제는 팜플로나(Pamplona)에서 발생한 끔찍한 집단 성폭행 사건과, 이에 대한 우익 판사들의 파렴치한 행태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는 소위 ‘민주주의 이행(Democratic Transition)’ 과정에서의 배신으로 인해 프랑코 독재로부터 고스란히 물려받은 스페인 국가기구, 경찰, 사법부 전체가 얼마나 반동적인 성격을 지닌 부패한 집단인지를 명백히 보여 주는 증거였다.
어떠한 대중운동에서든 그 안에 존재하는 반동적 요소와 진보적 요소를 주의 깊게 구분해야 한다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의 기본 원칙이다. 이 비범한 운동이 지닌 진보적 성격이 매우 컸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이 운동을 단순히 지지했을 뿐 아니라, 적극적이고 열정적으로 지지했다.
그러나 이 운동의 진보적 측면만을 강조한 채 다른 측면을 외면하는 것은 일면적이고도 잘못된 태도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운동의 지도부는 어떤 역할을 했는가? 그들은 최전선을 여성만으로 구성하고, 시위에서도 여성들만으로 이루어진 대오와 보라색 깃발만을 허용할 것을 요구했다(역자: 역사적으로 보라색은 여성 참정권 운동에서 비롯되어 여성을 상징하는 색으로 자리 잡아 왔다). 나아가 파업 역시도 여성들만 참여하도록 했으며, 남성들에게는 여성들의 빈자리를 대신해 직장에 남아 일할 것을 요구했다. 다시 말해, 남성들에게 스트라이크브레이커(strike-breaker: 파업 파괴자)의 역할을 강요한 것이다!
이러한 방침은 3월 8일 운동의 범위를 심각하게 제한했을 것이며, 총파업을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이는 운동의 이해관계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으며, 부르주아 및 소부르주아 페미니스트들의 협소한 시각과 그들의 반동적·분열주의적인 정책을 분명히 드러낸 것이었다.
스페인의 우리 동지들은 이 대중운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했으며, 매우 호의적인 반응을 얻었다. 우리는 페미니스트라는 이름을 쓰지는 않지만, 여성 해방을 위한 투쟁을 전적으로 지지하며, 억압에 맞서 싸우는 모든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함께 투쟁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우리는 모든 집회와 시위에서 우리에 대한 어떠한 편견의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 적어도 자신을 페미니스트라 부르는 대다수 여성들 사이에서는 그러했다.
페미니즘이 하나의 사상 학파나 이론이 아니라는 말은 사실일까? 그것은 페미니즘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 3월 8일 스페인에서 페미니즘의 기치 아래 파업과 시위에 참가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은 지도부가 지닌 페미니즘적인 편견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들은 자신들로 하여금 정당한 분노로 가득 차게 만든 반동적인 현실에 본능적으로 맞서 싸웠다. 바로 이것이 혁명적 발전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그 운동의 지도부는 부르주아 및 소부르주아 페미니스트들의 손에 있었다. 이들은 분명 하나의 사상적 조류이자 명확한 이데올로기를 대표하며, 그것은 마르크스주의뿐 아니라 여성 해방을 위한 투쟁의 이해관계 자체와도 근본적으로 대립한다.
오늘날 페미니즘이라는 개념은 지나치게 광범위해져 사실상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게 됐다. 갑자기 모두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칭하기 시작했다. 국민당(PP)의 반동적인 정치인들조차 여성 장관들을 임명했다는 이유로 자신들이 페미니스트라 주장한다. 그러나 그 여성 장관들 역시 남성 정치인들과 다를 바 없이 부패해 있으며 반동적이다.
국민당의 중고판이라 할 수 있는 시우다다노스(Ciudadanos)는 자신들이야말로 진정한 페미니스트라고 더욱 강하게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부르주아 페미니즘의 실체는 당 대표인 알베르트 리베라가 3월 8일 여성 파업을 ‘반자본주의적이기 때문에’ 지지할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밝힘으로써 여실히 드러났다. 또한 시우다다노스 소속 정치인들 가운데 일부가 결국 시위에 참가하려 했을 때, 시위 참가자들이 그들에게 야유를 보내며 내쫓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가장 선진적인 부문들에서조차 여러 혼란과 환상이 존재하며, 이는 부르주아 및 소부르주아 페미니즘의 ‘이론가’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조장되고 있는 것이다. 널리 퍼져 있는 또 다른 사상은 계급이나 정치적 이념 등을 막론하고 모든 여성이 하나의 운동에 함께해야 한다는 이 운동의 ‘횡단적(transversal)’ 성격에 관한 주장이다.
우리는 우호적이고 인내심 있는 태도로 이러한 편견에 맞서며 혼란을 해소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기치가 다른 사상과 뒤섞여서는 안 된다. 최고의 분자들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언제나 확고하고 분명한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역시 이러한 중요층과 결합하기 위해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불러야 하는가? 우리의 모든 경험은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특히 다음 사례가 그렇다. 말라가의 안테케라에서는 3월 8일 여성 파업을 주제로 삼아 한 집회를 조직했으며, 좌파 및 노동조합 단체의 여러 여성 연사들이 참석했다. 우리의 여성 동지 한 명도 연사로 나서 자신이 노동조합 활동가이자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임을 밝히고, 우리의 강령을 설명했다. 집회가 끝난 뒤 젊은 여성 몇 명이 곧바로 우리 선전 부스를 찾아와 운동에 함께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젊은 여성들은 분명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마르크스주의의 강령에 자신을 동일시하는 데 아무런 거리낌도 보이지 않았다.
만약 우리 동지들이 이 운동에 대해 종파적이고 교조적인 태도를 취했다면, 의심할 여지 없이 그 여성들과 스스로를 단절시키는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가 그런 어리석은 태도를 취하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우리는 원칙적인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즉, 우리는 여성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마르크스주의자이며, 이 중요한 투쟁은 사회를 근본부터 철저히 변혁하기 위한 전반적인 혁명적 계급투쟁의 일부로서만 성공적으로 수행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분명한 유비(類比)를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민족 문제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태도이다. 우리는 과연 카탈루냐의 (스페인 국가로부터의) 독립 요구를 지지하는가? 그렇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자본주의적 토대 위에서는 독립이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설명한다. 우리는 카탈루냐 노동자 공화국을 지지하며, 그것은 장차 이베리아 민족들의 사회주의 연방의 일부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마르크스주의적 민족주의자라고 부르는가? 당연히 아니다! 우리는 민족주의자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자이다. 반동적인 스페인 국가, 부패한 국민당 정부, 그리고 프랑코로부터 물려받은 비민주적 왕정의 지배로부터 카탈루냐 인민이 스스로를 해방시키기 위한 투쟁을 지지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혁명적 국제주의 강령의 일부이다. 다만 동시에 ‘마르크스주의적 민족주의자’라는 표현은 자기모순적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의 카탈루냐에서의 경험은 노동자와 청년들 가운데 가장 선진적이고 혁명적인 분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그러한 혼란스러운 용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음을 보여 준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미 부르주아 및 소부르주아 민족주의의 한계와 반동적 성격을 이해하기 시작했으며, 그의 대안으로 보다 급진적이고 혁명적이며 계급적인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민족 억압, 성차별, 인종차별 등 세상의 문제들과 맞서는 모든 투쟁은 전부 계급적인 성격을 지닌다. 바로 이 점이 마르크스주의와 민족주의, 페미니즘, 그리고 억압에 맞선 투쟁의 다른 모든 사상적 조류를 가르는 근본적인 분기선이다.
스페인의 3월 8일 운동은 이러한 점들을 더욱 분명히 보여 주었다. 여성 억압에 맞선 대중운동은 엄청난 혁명적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 잠재력은 이러한 운동들이 부르주아 및 소부르주아 페미니즘의 협소한 한계를 넘어, 사회를 변혁하기 위한 노동계급의 전반적인 운동과 결합할 때에만 온전히 발휘될 수 있다. 우리의 임무는 이 운동이 그러한 이행을 이루도록 돕는 것이다.
우리의 역할은 이러한 사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그 안에서 가장 선진적인 분자들을 우리 편으로 조직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언제나 그 안에 존재하는 계급적 분열을 분명히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는 운동의 진보적인 측면을 기반으로 활동하면서도, 지도부 내의 부르주아 및 소부르주아적 요소들에 대한 폭로와 비판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이론의 중요성
엥겔스는 혁명운동에서 이론이 지니는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투쟁에는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이라는 두 가지 형태뿐만이 아니라 세 번째인 이론투쟁도 있으며, 이론투쟁을 앞의 두 형태와 동등한 위치에 두어야 한다 지적했다. 레닌 역시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다음과 같이 쓰며 엥겔스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혁명적 이론 없이는 혁명적 운동도 있을 수 없다. 기회주의를 유행처럼 설교하는 풍조가 가장 협소한 형태의 실천 활동에 대한 맹목적 숭배와 나란히 나타나는 오늘날과 같은 시기에는, 이 사상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진정한 마르크스주의 인터내셔널을 건설하기 위한 선행 조건은 마르크스주의의 기본 원칙을 수호하는 것이다. 이는 본질적으로 노동운동에 대한 이질적 계급의 압력을 반영하는 온갖 수정주의 사상에 맞서 비타협적인 투쟁을 벌이는 것을 의미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운동의 사상을 희석하려는 모든 시도에 맞서 단호하게 투쟁했으며, 먼저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의 잘못된 이론을, 이어 프루동과 바쿠닌의 추종자들의 이론을,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뒤링과 같은 강단사회주의자(Katheder-Sozialisten), 즉 사회주의를 ‘현대화’한다는 구실 아래 마르크스주의의 혁명적 본질을 제거하려 했던 ‘영리한’ 대학 교수들의 기회주의를 가차 없이 폭로했다.
레닌은 혁명 활동의 초기부터 뒤링과 같이 ‘비판의 자유’를 요구하며 마르크스의 일부 사상이 시대에 뒤떨어졌으므로 수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청년들’에게 전면적인 사상 투쟁을 선포했다. 그는 소위 ‘교조주의에 대한 반대’는 결국 마르크스주의의 혁명적 내용을 ‘작은 실천’이라는 기회주의적 노선으로 대체하려는 사람들의 구실에 불과하다는 점을 밝혀냈으며, 이러한 경향은 훗날 멘셰비즘으로 구체화되었다.
이후 1905년 혁명의 패배 뒤에 이어진 반동기의 시기에는 중간계급 지식인층 일부에 퍼져 있던 절망의 분위기가 볼셰비키 내부에도 반영되었다. 지도부의 일부였던 보그다노프와 루나차르스키는 당시 유행하던 주관적 관념론(신칸트주의)과 신비주의 철학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으며, 그 분위기는 볼셰비즘 내부에서도 일정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레닌이 이러한 사상에 맞서 자신의 가장 중요한 철학 저작 가운데 하나인『유물론과 경험비판론』을 집필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이러한 철학적 문제는 극좌적인 정치 노선과도 연결되어 있었으며, 레닌은 이 문제에 대해 필요할 경우 볼셰비키 지도부 다수와도 결별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트로츠키는 생애 말기에 소련의 계급적 성격을 둘러싸고 미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내부의 소부르주아적 경향(번햄과 샤흐트만)과 첨예한 투쟁을 벌였다. 트로츠키는 그들이 소련 방어를 거부하는 잘못된 입장을 취한 것은 한편으로는 사회주의노동자당에 가해진 이질적 계급(소부르주아 지식인층)의 압력이 반영된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마르크스주의 철학, 즉 변증법을 거부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몇 가지 사례만으로도, 이론을 위한 투쟁이 우리 운동의 역사에서 언제나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는지를 알 수 있다. IMT[역자: 국제 마르크스주의 경향. 혁명적 공산주의 인터내셔널(RCI)의 전신.]을 다른 모든 경향들과 구별 짓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무엇보다도 이론에 대해 신중하고 치밀한 태도를 견지해 왔다는 점이다. 150여 년에 걸쳐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 사회의 운동을 지배하는 법칙에 기초하여 과학적 강령을 발전시켜 왔다. 이는 거대한 역사적인 성취이며, 우리는 우파로부터든 ‘좌파’로부터든 그들로부터 가해지는 모든 공격에 맞서 이를 수호해야 한다.
국제마르크스주의경향은 이 점에서 자랑스러운 전통을 지닌다. 전직 ‘공산주의자’들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마르크스주의 사상을 버려가던 시기에도 우리는 마르크스·엥겔스·레닌·트로츠키의 근본적인 사상을 수호하는 데에 있어 한 치의 타협도 하지 않았다. Marxist.com 웹사이트는 이론적인 명료성으로 탁월한 명성을 쌓아 왔다. 바로 이것이 우리를 노동운동 내의 다른 모든 경향들과 분명하게 구별해 온 주요 특징이다.
우리는 항상 부르주아 및 소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압력을 반영하는 수정주의자들에게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다. 마르크스의 사상은 낡았으며, 그것을 새로운 사상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외치는, 귀청이 터질 듯한 합창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사상은 사실은 가장 현대적인 사상이며, 동시에 오늘날의 위기를 설명하고 그로부터 벗어날 길을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사상이기도 하다.
문화의 쇠퇴
역사에는 비관과 회의, 절망의 분위기가 지배하는 시기가 존재한다. 이러한 시기에는 필연코 기존 사회와 그 이데올로기에 대한 신뢰를 잃은 사람들이 혁명적인 대안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그 낡은 사회는 비록 죽음을 앞두고 비틀거리고 있을지라도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예전과 같은 적극적인 지지를 얻지는 못할 수 있지만, 마치 시체가 악취를 풍기는 것과 같이 부정적인 분위기를 끊임없이 퍼뜨린다.
부르주아지들은 청년기에는 진보를 신뢰했다. 자본주의는 잔혹하고 착취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데 매우 진보적인 역할을 수행했으며, 이를 통해 더 높은 단계의 인간 사회인 사회주의가 성립할 물질적 토대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과거 부르주아지가 그나마 진보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던 시기에 그들은 혁명적인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었다. 로크와 홉스, 루소와 디드로, 칸트와 헤겔,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 뉴턴과 다윈과 같은 위대한 독창적 사상가들은 그 시대에 탄생한 인물들이다. 그러나 쇠퇴기에 접어든 부르주아지가 생산해 내는 지적 산물은 극도로 노쇠한 퇴행의 모든 징후를 드러내고 있다.
오늘날 철학이라는 이름 하에 통용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혼란은 그 자체로 가장 처참한 지적 파산의 고백과도 같다. 대학 캠퍼스를 거닐며 우월한 체하는 지적인 속물들은 과거의 철학자들을 경멸의 대상으로 취급한다. 그러나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은 그 내용의 빈곤이 너무나도 뚜렷하여, 그들은 위대한 사상가들 가운데 그 누구와 비교당하더라도 순식간에 보잘것없는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역사적 진보라는 개념 자체를 부정한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낳은 사회 자체가 더 이상 어떠한 진보도 이룰 수 없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적 ‘서사’가 새로운 철학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제국주의 쇠퇴 시대의 자본주의와 부르주아 지식인층이 얼마나 심각한 이론적 파산 상태에 있는지를 통렬하게 보여 주는 증거이다. 헤겔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 정신의 욕구를 이토록 보잘것없는 것으로 만족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는 그 정신이 얼마나 큰 것을 상실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오늘날의 시대는 이념적 혼란과 변절, 해체와 분산으로 특정지어진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어제까지만 해도 자본주의를 끝없는 출세의 원천이자 안락한 생활수준을 보장하는 체제로 여겼던 지식인층은 오늘은 비관주의에 사로잡히고 만다.
은행가들을 구하기 위해 자본주의는 사회의 나머지 구성원들을 모두 희생시킬 태세를 갖추고 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불확실한 미래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전반적인 파탄은 노동계급뿐만이 아니라 중간계급, 학생과 교수, 연구자와 기술자, 음악가와 예술가, 강사와 의사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간계급 내부에서는 광범위적인 동요가 일어나고 있으며, 이는 특히 지식인층에서 가장 첨예하게 나타난다. 중간계급은 거대 자본가들과 노동계급 사이에 끼어 자신의 불안정한 처지를 날카롭게 체감하는 계급이다. 그 가운데 일부는 좌경화되고 있지만, 특히 학계를 중심으로 한 다수는 비관과 불확실성의 분위기에 지배되고 있다.
그들의 “진보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실제로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오늘의 사회는 내일이 오늘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어떠한 보장도 하지 못하며, 오히려 악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조차 없다. 이 점 자체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은 인류를 역사적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고, 문명과 문화는 물론 인류 자체의 미래까지 위협하는 현 체제를 전복하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는 대신, 한구석으로 움츠러든 채 자기 안으로 도피한다. 그러면서도 어차피 진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기위안으로 불편한 양심을 달랜다.
이러한 편협한 편견과 통찰력의 결여, 그리고 지적인 비겁함으로부터 필연적으로 보다 실천적인 결론들이 도출된다. 그것은 혁명을 거부하고 ‘작은 실천’을 추구하는 태도(예컨대, 단어와 ‘서사’를 둘러싼 옹졸한 논쟁에 매달리는 것), 주관성으로의 후퇴, 계급투쟁의 부정, ‘당신의’ 억압보다 ‘나의’ 특정한 억압을 우위에 두는 태도 등이다. 이러한 경향은 다시 운동을 점점 더 분절화시키고, 결국에는 더 나아가 운동이 분자화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물론 오늘날의 상황과 레닌이 1908년에 그토록 격렬하게 맞서 싸웠던 사상들 사이에는 일정한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나 그 차이는 형식상의 차이에 불과할 뿐 내용은 매우 유사하며, 거의 동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이 낳는 실천적 결과는 완전히 반동적이다.
변절의 시대
레닌은 언제나 문제와 어려움을 있는 그대로 인정했다. 그의 좌우명은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말하라.”였다. 때로는 진실이 달갑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진실을 말해야 한다. 현실은, 객관적인 요인과 주관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 혁명운동이 후퇴했고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의 세력도 소수로 축소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진실이며, 이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자신과 타인을 속일 뿐이다.
최근 수십 년 동안 마르크스주의의 기본 원리를 수정해야 한다는 날카로운 요구는 점점 더 거세져 왔다. 그들은 우리에게 마르크스주의가 ‘교조주의’와 동의어이며, 심지어는 스탈린주의와도 동일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마르크스주의의 ‘낡고 파산한’ 사상을 대신할 것이라며 이른바 ‘현대적인’ 사상을 필사적으로 찾아 나서는 이러한 움직임은 결코 우연한 현상이 아니다.
노동계급은 다른 계급들과 단절된 채 존재하는 존재가 아니며, 필연적으로 이질적 계급과 그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받는다. 우리 역시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활동하며, 끊임없이 이러한 압력과 사회적 분위기의 영향을 받는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노동계급과 그 조직 내부로 침투할 수 있다. 특히 노동계급의 전반적인 운동이 침체되어 있는 시기에는 부르주아지, 그리고 무엇보다 소부르주아지의 압력이 한층 더 강해진다.
노동계급이 오랜 기간 일시적으로 비활동 상태에 빠져 있던 동안, 노동운동 내부에서 소부르주아적인 요소들이 전면에 등장하여 노동자들을 한쪽으로 밀어냈다. 더 이상 투쟁할 의지를 잃은 ‘영리한’ 사람들이 노동자들에게 혁명은 눈물과 실망만 가져올 뿐이라고 설득하려 들기 시작하면서,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그들의 합창 속에 파묻히고 있다.
스탈린주의의 붕괴 이후에는 전반적인 혼란과 이념적 후퇴의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 운동을 떠났고, 냉소주의와 회의주의는 하나의 유행이 되어 버렸다. 사회민주주의 정당과 공산당의 배신에 환멸을 느낀 좌파 지식인들은 스탈린주의와 개혁주의를 단절하는 방향보다, 마르크스주의와 혁명적 사회주의 사상 자체로부터 등을 돌리는 방향을 선택했다.
많은 사람들, 특히 옛 스탈린주의자들은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을 버리고, 이른바 ‘새로운 방법’을 찾아 돈키호테식의 방황에 나섰다. 그러나 그것은 무지개 끝의 황금 항아리처럼 결코 발견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렇게 나이 든 냉소주의자들에게, 혁명을 향한 젊은 시절의 꿈은 이제는 어리석은 망상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대표적인 수정주의자 하인츠 디터리히에 따르면, 그것은 ‘젊은 날의 죄’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과거를 청산하고, 젊은 시절의 ‘실수’를 바로잡으려 하며, 동시에 새로운 세대가 그 ‘죄의 길’을 따라가지 않도록 단념시키려는 강한 충동을 느낀다.
그와 동시에 노동운동 조직들은 점차 우경화되었다. 노동자들은 지도적 지위를 장악한 중간계급 출신의 출세주의자들에게 밀려 주변으로 내몰렸다. 그 결과 많은 노동자들이 활동을 중단하게 되었고, 이는 다시 노동운동 내부에서 소부르주아적 요소가 더욱 확대되는 순환의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시기에는 노동자의 목소리가 ‘새로운 현실주의’, ‘신노동당’등의 이른바 ‘혁신’을 내세우는 개혁주의의 외침 속에 묻혀 버린다. 즉 소부르주아적 사상이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계급정치와 혁명적 사회주의의 사상은 ‘낡은 것’으로 규정된다. 그리고 ‘교조적 마르크스주의’를 대신한다는 명목 하에 평화주의, 페미니즘, 환경주의 등 온갖 ‘주의(ism)’들이 등장한다. 다시 말해 사회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제외한 그 어떤 ‘주의’라도 환영받는 것이다.
트로츠키는 1938년 『이행기 강령』에서 이러한 현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세계 프롤레타리아트가 오랜 기간에 걸쳐 겪은 비극적인 패배는 공식적인 노동자 조직들을 더욱 보수적이게 만들어으며, 동시에 지친 소부르주아 ‘혁명가’들로 하여금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게 했다. 반동과 쇠퇴의 시대에는 언제나 혁명 사상의 전 과정을 수정하려는 돌팔이들과 협잡꾼들이 사방에서 등장한다. 그들은 과거로부터 배우는 대신 과거 자체를 ‘부정’한다. 어떤 이들은 마르크스주의의 불완전성을 발견했다 주장하고, 또 어떤 이들은 볼셰비즘의 파산을 선언한다. 혁명적 교리를 배신한 자들의 오류와 범죄를 혁명적 교리 자체의 책임으로 돌리는 사람들도 있고, 즉각적이고 기적 같은 치유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약 자체를 저주하는 사람들도 있다. 좀 더 대담한 자들은 만병통치약을 발견하겠다고 장담하면서, 그때까지는 계급투쟁을 중단할 것을 권고한다. 또한 ‘새로운 도덕’의 수많은 예언자들은 윤리적 동종요법(역자: 비슷한 것은 비슷한 것으로 치료한다는 원리를 기반으로 한 18세기 독일의 대체의학)을 통해 노동운동을 재생시키겠다고 나선다. 그러나 이 사도들 대부분은 전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스스로 도덕적 불구자가 되고 만다. 이렇게 해서 ‘새로운 길’이라는 이름 아래, 사회주의의 책장 속에 오래전부터 묻혀 있던 마르크스 이전의 낡은 처방들이 다시금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노동운동의 변두리에서 겨우 생존을 이어가는 극좌 종파들의 사정도 결코 다르지 않다. 그들은 두세 마디마다 마르크스, 레닌, 트로츠키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만, 정작 그들의 저작을 다시 출판하는 데에는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다. 대신 부르주아지와 소부르주아지로부터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인 보다 ‘모던한’(혹은 ‘포스트모던한’) 사상들을 선호한다. 만델주의 종파(소위 제4인터내셔널 통합서기국)는 이러한 경향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 중 하나이다.
다른 극단에는 영국의 타프파 CWI(노동자국제위원회)와 사회주의노동자당, 그리고 프랑스의 뤼트 우브리에르와 같은 종파들이 있다. 이들은 레닌이 신랄하게 비판했던 ‘경제주의(economism)’의 수렁으로 다시 빠져들었다. 그들이 내세우는 선동적인 ‘노동자주의(workerism)’와 학생 및 지식인 전체를 배척하는 태도는, 이론을 경시하고 혁명적 정치를 ‘실천 정치’와 ‘먹고사는 문제’로 대체하려는 입장을 감추기 위한 허울에 불과하다. 이러한 일탈 가운데 어느 쪽이 진정한 마르크스주의로부터 더 심각하게 벗어난 것인지는 판단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옛 사상을 새로운 사상으로”
알라딘 이야기에서, 사악한 마법사는 행상인으로 변장한 뒤 낡은 램프를 반짝이는 새 램프로 교환해 주겠다고 제안한다. 알라딘의 공주는 어리석게도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 결과 지니가 지닌 힘을 잃고 만다. 이는 흥미로운 이야기인 동시에 중요한 교훈을 담고 있다. 이미 그 가치를 입증한 것을 눈부시게 빛나는 금빛 장식과 맞바꾸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그 화려함은 결국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자본주의의 위기가 이미 마르크스주의의 정당성을 완벽히 입증하고 있는 현 시점에, 좌파 내부에서는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마치 쓸모없는 짐짝이라도 되는 것처럼 내다 버리려는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한때 ‘공산주의자’였던 사람들마저 이제는 사회주의라는 말조차 입에 올리지 않으며,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을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던져 버렸다.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의 사상은 낡았고, 시대에 뒤떨어졌으며, 더 이상 현실과 무관한 것으로 묘사된다. 중간계급 지식인들과 이른바 ‘진보주의자’들은 마르크스주의를 깎아내리기 위해 앞다투어 나선다. 이러한 전반적인 이념적 혼란, 마르크스주의의 ‘정통성’에 대한 의문 제기, 그리고 이론에 대한 거부는 우리 조직 내부에도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결코 새롭지 않다. 이와 같은 반혁명적이고 개량주의적인 경향은 언제나 노동운동 내부에 존재해 왔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마르크스와 엥겔스, 레닌, 트로츠키 모두 ‘새로운 사상’을 내세우는 똑같은 공세와 맞서 싸워야 했다. ‘새로운 길’은 뒤링과 베른슈타인 이래 모든 수정주의자들이 한결같이 내세워 온 구호이다. 우리는 이미 이러한 ‘현대적 대안’들 중 일부를 앨런 우즈의 저서 『개혁인가 혁명인가』, 『21세기의 사회주의』, 『하인츠 디터리히에게 보내는 답변』에서 이미 다룬 바 있다.
마르크스주의를 수정하려는 이러한 끊임없는 시도는, 과거의 패배와 실패로 사기가 꺾여 혁명적 변혁을 위해 실제로 투쟁하려는 의지를 상실한 기성세대의 낙담을 반영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 기성세대는 스스로의 양심을 달래기 위해, 이제는 ‘나이가 들고 더 현명해져’ 마르크스주의라는 ‘낡은 사상’이 결국엔 오늘날의 현실과는 아무런 실천적 관련이 없는 공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마르크스주의자인 척한다.
이러한 주장들의 유일한 목적은 청년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최대한의 혼란을 조성하며, 새로운 세대가 마르크스주의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장벽 역할을 하는 데에 있으며, 이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공격하는 부르주아지의 선전 공세를 그대로 비춘 거울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거짓된 기치 아래 자행된다는 점에서, 노골적인 공격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해롭다.
이러한 사상의 옹호자들은 근본적으로 혁명과 사회주의에 반대하지만, 그것을 공개적으로 인정할 용기는 없다. 어쩌면 그들 스스로도 부정하고 있을지도 모른다(자신이 써 놓은 허황된 주장들을 실제로 얼마나 믿고 있는지는 심리학 전문가만이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반동적이고, 반혁명적이며, 반사회주의적인 메시지를 두꺼운 ‘좌파적’, ‘급진적’ 수사들로 포장하여 대부분의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본성을 더욱 알아보기 어렵게 한다. 그 결과 사회주의 사상은 희석되고 수정되거나, 아예 폐기되기까지 한다.
마르크스주의 경향 역시 자본주의의 압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중간계급 지식인층의 혼란스럽고 비관적인 분위기는 때때로 마르크스주의 운동 내부에서도 반향을 일으킨다. 그것은 ‘답답한 정통주의’에 대한 끊임없는 공격과 ‘무언가 새로운 것’을 요구하는 끊임없는 호소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러한 모습은 알라딘 이야기 속 마법사의 유혹적인 목소리를 떠올리게 한다.
학생운동의 위험성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향한 공격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를 노골적으로 옹호하는 세력에게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우파와 좌파를 막론한 개량주의자들, 그리고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고자 하면서도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는 전혀 알지 못하는 이른바 급진적 소부르주아 지식인층으로부터도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 거센 공격에 대해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굉장히 익숙하다.
우리는 학생 및 청년 활동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해 왔으며, 이러한 방침은 영국뿐 아니라 미국과 캐나다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매우 중요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가까운 장래에도 우리는 이러한 방향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 활동이 어떠한 방식으로 수행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학생들 사이에서의 활동이 우리에게 매우 큰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 활동에는 적지 않은 위험과 함정 또한 존재한다는 사실 역시 분명하다. 우리는 심각한 결과를 피하기 위해 언제나 이러한 위험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대학은 이질적인 계급 출신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환경이며, 부르주아 및 소부르주아 사상의 강한 영향을 받는 공간이라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학생 사회는 여전히 압도적으로 부르주아 및 소부르주아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이러한 환경은 노동계급 출신 학생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많은 경우 그들은 사회적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뒤, 자신이 올라온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고 의사나 변호사, 또는 정치인이 되기 위해 자신의 계급을 뒤로한 채 떠나려는 강한 욕망을 드러낸다.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일은 너무나 자주 벌어진다.
대학은 사회에 반동적인 부르주아 사상을 확산시키는 컨베이어 벨트 역할을 하는데, 그것은 부르주아지가 청년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오도하여 혁명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기 위해 온갖 기괴한 사상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일종의 온실과도 같다. 즉, 대학은 ‘배움의 전당’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적 옹호자들을 대량으로 생산해 내는 공장인 것이다.
자본주의가 쇠퇴기에 접어든 오늘날에, 대학은 반동적 사상들이 무성하게 자라나는 독성 늪지로 변해 버렸으며, 그 사상들에 정면으로 맞설 용기를 가진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르크스주의자 학생들의 최우선 임무는 바로 이러한 사상들과 맞서 싸우는 것이다. 이에는 부르주아 학계가 노골적으로 옹호하는 반동적 사상들에 맞서는 것부터, 체제에 반대하는 척하면서도 실제로는 이런저런 개별적 증상에 대한 무기력한 분노를 표출하는 데 그치는 이른바 ‘진보적’이고 ‘급진적’인 소부르주아 세력이 퍼뜨리는 무수한 혼란스러운 관념들에 대한 거부까지 포함한다.
사상적인 무기로서의 반동
이러한 사상의 옹호자들이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에 대학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 역시 결코 우연이 아니다. 계급투쟁이 후퇴하기 시작하자, 대학 내부에서는 대대적으로 반(反)마르크스주의 공세가 전개되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에 혁명적 운동에 참여했던 일부 인물들은 대학으로 흡수되어 안정된 지위를 보장받았고, 그곳에서 마르크스주의를 공격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이러한 공격 가운데 일부는 노골적으로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야만적인 형태를 띠었지만, 다른 일부는 훨씬 더 교묘하고 은폐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교차성과 정체성 정치는 ‘좌파’ 지식인들에게 계급투쟁을 떠나 사회주의를 포기하면서도, 겉으로는 계속해서 진보적인 대의를 지지하는 척할 수 있는 편리한 수단을 제공했다.
오늘날 이러한 사상들이 지배계급에 의해 교육체계 전반에 걸쳐 적극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예를 들어, 퀴어 이론은 최근 수십 년 동안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한 포스트모더니즘과 그 밖의 관념론적·주관주의적 사상들의 흐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1985년에 작성되었다 이후 기밀 해제된 CIA 보고서 『프랑스: 좌파 지식인들의 이탈(France: Defection of the Left Intellectuals)』은 학계의 우경화를 미국 정보기관이 얼마나 반겼는지를 잘 보여 준다.
“미테랑 정부의 정책 실패와 공산당과의 단명한 연립정부는 그의 정부에 대한 환멸을 가속화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좌파 지식인들은 적어도 1970년대 초부터 사회주의, 즉 사회주의 정당과 사회주의 이념 모두로부터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신철학자(New Philosophers)’라고 부른 공산주의 진영 출신의 젊은 이탈자들의 주도 아래, 많은 신좌파 지식인들은 마르크스주의를 거부하고 소련에 대한 깊은 반감을 형성했다. 실제로 반소주의는 좌파 진영에서 정당성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었으며, 이는 좌파 지식인들의 유서 깊은 반미주의를 약화시키고 미국 문화는 물론 미국의 정치, 경제 정책마저도 새로운 유행으로 받아들여지게 만들었다." (우리의 강조)
이어서:
“마르크스주의 이데올로기의 파산. 철학 체계로서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환멸은, 모든 정치적 성향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나타난 보다 광범한 이데올로기 이탈 현상의 일부였으며, 전통적 좌파에 대한 특히 강력하고 광범위한 지적 환멸의 근원이 되었다. 레몽 아롱은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의 대학 시절 룸메이트였던 사르트르를, 그리고 그를 통해 프랑스 마르크스주의의 지적 체계를 무너뜨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를 약화시키는 데 더 큰 효과를 거둔 것은, 초반엔 진정한 신봉자로서 사회과학에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적용하려 했지만, 결국엔 그 전통 전체를 재검토하고 거부하게 된 지식인들이었다.
“전쟁 이후(post-war) 프랑스 역사학에서는 마르크 블로크, 뤼시앵 페브르, 페르낭 브로델과 연관된 영향력 있는 학파가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들을 압도했다. 대표 학술지의 이름을 따 아날 학파(Annales School)로 알려진 이 학파는, 당시까지 지배적이었던 역사 발전에 관한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도전하고 나아가 이를 거부함으로써, 1950-60년대 프랑스 역사학을 근본적으로 뒤바꾸었다. 이 학파의 많은 학자들이 여전히 자신들은 ‘마르크스주의 전통’에 속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그들이 의미하는 바는 마르크스주의를 사회사의 실제 발전 패턴을 탐구하기 위한 비판적 출발점으로 활용한다는 것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과거 사회의 구조, 사회적 관계, 사건 전개의 양상, 그리고 그것들이 장기적으로 미치는 영향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의 개념들이 지나치게 단순하며 타당하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인류학 분야에서는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푸코 등과 관련된 영향력 있는 구조주의 학파가 사실상 동일한 역할을 수행했다. 아날 학파와 구조주의의 방법론 모두 오늘날에는 예전만큼의 영향력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으나(비판자들은 그것들이 입문자들이 이해하기에는 지나치게 어렵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사회과학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영향력을 비판적으로 해체한 그들의 작업이 프랑스는 물론 서유럽 전역의 현대 학문에 지속적이고도 중대한 기여로 남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우리의 강조)
이와 마찬가지로 CIA는 『파르티잔 리뷰(Partisan Review)』, 아도르노와 아렌트 등의 글을 게재한 『데어 모나트(Der Monat)』, 『문도 누에보(Mundo Nuevo)』 등 이른바 '반(反)전체주의' 좌파 출판물들을 비밀리에 지원하는 데에도 관여했다. 이러한 잡지들을 관통하는 공통된 주제는 계급투쟁에 대비되는 존재로서의 ‘지식인’의 역할을 옹호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대학을 지배하고 있는 부르주아 및 소부르주아 사상은 바로 이러한 지식인들의 손에서 탄생했다. 푸코는 흔히 퀴어 이론의 아버지로 여겨진다. 계급투쟁이 후퇴하고, 지도부의 거듭된 배신이 이어지자, 이 신사숙녀들은 문제는 노동운동의 지도부가 아니라 계급투쟁과 노동계급 자체에 있다고 결론 내렸으며, 이는 자신들의 ‘철학’을 부르주아지와 노동관료층의 이해관계에 맞게 조정하는 행위에 불과했다. 그들의 사고 속에서, 계급투쟁은 더 이상 하나의 통일된 사회적 투쟁이 아니라, 서로 아무런 공통성도 없는 무수한 개별적 투쟁들로 해체되어 버렸다.
그들이 계급투쟁의 존재를 인정한 때에도, 그들은 노동계급의 이른바 ‘후진성’을 경멸하며, 운동을 이끄는 비겁한 지도부가 과감한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보다는 ‘담론’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CIA 보고서가 보여 주듯이, 지배계급은 유행하는 이러한 ‘급진적’ 사상들을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는 것으로 보기는커녕, 마르크스주의에 맞선 사상적 투쟁에서 매우 유용한 도구로 여기며 기꺼이 환영했다.
‘교차성’과 ‘정체성 정치’
급진적 소부르주아층을 휩쓴 가장 최신의 정체성 정치 변종 가운데 하나는 바로 교차성이라는 개념이다. 이는 선의를 가진 청년들의 사소한 일탈이나 혼란이 아니라, 철저히 퇴행적이고 반동적이며 반혁명적인 이데올로기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에 맞서 싸워야 한다.
지배계급은 언제나 “분할하여 지배하라(divide and rule).”라는 오랜 통치 전략에 따라 노동계급 내부에 분열을 조장하려 애써 왔다. 그들은 노동자들의 한 집단을 다른 집단과 맞서게 만들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 인종, 민족, 언어, 성별, 그리고 종교 등의 모든 것이 노동계급을 분열시키고, 부자와 빈자, 착취자와 피착취자 사이의 계급투쟁으로부터 노동계급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이용되어 왔으며, 지금도 여전히 이용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좌파라면 거의 누구나 알고 있으며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에 존재하는 인종차별과 성차별, 그리고 다른 모든 형태의 억압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반대 방향으로 치우쳐 계급적 관점을 버리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즉, 우리를 하나로 묶는 것보다 우리를 갈라놓는 것을 무엇보다 앞세우고, 계급사회의 산물로서의 억압의 근본 원인을 외면하며, 통일된 계급투쟁을 희생시키며 특정 집단의 부분적인 이해관계를 내세움으로써 지배계급의 논리에 말려드는 것이다.
특정한 억압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억압의 진정한 토대, 즉 계급사회 그 자체를 무시하거나 축소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노동계급을 자본에 맞선 혁명적 투쟁으로 단결시키려는 모든 시도에 반대하며, 그 대신 이런저런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극히 부정적이다.
점점 더 많은 경우에 대학 당국과 학생회는 ‘정치적 올바름’, 정체성 정치, 그리고 특정 집단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노골적인 차별과 검열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그들은 인종차별주의자나 파시스트뿐 아니라, 점점 더 많은 좌파 인사들의 발언까지도 금지하고 있다.
캐나다에서 있었던 다음 사례는 이러한 집단들의 반혁명적 활동을 폭로하기에 충분하다. 미국 대선 직후, 토론토의 한 청년들은 페이스북을 통해 자발적으로 반(反)트럼프 시위를 조직하려 했다. 그러나 이들은 곧바로 정체성 정치 지지자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 그들은 집회 연단에 흑인 연사가 없다는 등의 갖가지 이유를 들어 이 청년들을 가장 악랄한 방식으로 공격했다. 그 결과, 위축감을 느낀 이 청년들은 사기가 꺾였고 결국 운동에서 이탈하게 되었다. 이 사례는 결코 예외적이지 않으며, 이 경향의 반동적 전술을 전형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이다.
이제는 사물을 올바른 이름으로 부를 때가 되었다. 그 말인즉, 최근 몇 년 사이 고개를 든 정체성 정치와 그와 관련된 온갖 허튼소리들이 명백히 반동적인 경향을 대표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이에 맞서 최대한의 단호함으로 투쟁해야 한다.
민족 문제
이른바 정체성 정치와 민족 문제 사이에는 일정한 유사성을 찾아볼 수 있다. 물론 모든 비유에는 한계가 있지만 이 경우에는 매우 분명하며, 다음과 같이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민족, 성별, 인종, 언어, 종교, 또는 그 밖의 어떤 것이든, 모든 형태의 억압과 차별에 반대하며, 이에 맞서 투쟁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강력하고 약탈적인 제국주의 국가들에 맞서 억압받는 민족을 옹호한다. 우리는 모든 형태의 억압에 반대한다. 이것이 우리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본적인 원칙만으로는 민족 문제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 ㄱ, ㄴ, ㄷ 다음에도 글자는 계속 이어진다.
마르크스는 노동 문제야말로 언제나 가장 중요한 문제이며, 민족 문제는 언제나 이에 종속된다고 설명했다. 민족자결권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절대적 권리가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국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총체적 이해관계에 종속된다. 레닌도 이 점을 거듭 강조했다. 자본주의에 맞선 노동계급의 투쟁은 모든 민족의 노동자들의 완전한 연대와 가장 긴밀한 단결을 요구한다.
우리는 모든 형태의 민족적 억압과 차별에 맞서 투쟁하는 동시에, 부르주아 및 소부르주아 민족주의자들이 노동계급을 자신들의 특수한 견해와 정책에 종속시키려는 시도에도 맞서야 한다. 레닌은 1914년 『민족자결권에 대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고용노동자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을 주로 착취하는 부르주아지가 대(大)러시아 출신인지, 아니면 비(非)러시아 출신인지, 또는 폴란드 출신인지, 아니면 유대인인지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계급적 이해관계를 자각한 고용노동자는 대러시아 자본가들의 국가적 특권에도, 국가적 특권을 획득하면 지상낙원을 세워 주겠다고 약속하는 폴란드나 우크라이나 자본가들의 약속에도 똑같이 무관심하다. 어쨌든 자본주의는 다양한 민족이 뒤섞여 있는 통합 국가 안에서도, 그리고 각각의 민족국가 안에서도 발전해 왔으며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것이다.”
레닌이 민족의 자결권, 분리(독립)할 권리까지 포함한 자결권을 일관되게 지지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는 그것은 방정식의 한쪽 면에 불과할 뿐이다. 레닌은 노동계급과 그 조직들의 단결 또한 옹호했으며, 민족적 경계를 기준으로 노동자 조직을 건설하자는 어떠한 제안에도 한 치의 양보 없이 반대했다(감히 말하자면, 오늘날의 ‘정체성 정치’ 노선을 따른 조직 건설 말이다).
민족 문제에 관한 저작들에서 레닌은 민족의 자결권, 분리할 권리까지 포함한 자결권을 일관되게 옹호하는 한편,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소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로부터 자신들을 분명히 구별해야 할 필요성도 강조했다.
“둘째로, 우리나라(러시아)에서는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를 일반적인 부르주아 및 소부르주아 민주주의로부터 분리해 내기 위한 불가피한 투쟁—이는 본질적으로 모든 나라가 겪는 투쟁과 동일하다—은 서구와 우리나라에서 마르크스주의가 이론적으로 완전한 승리를 거둔 조건하에 전개되고 있다. 따라서 이 투쟁은 더 이상 마르크스주의를 위한 투쟁이라기보다는, ‘거의 마르크스주의적인’ 문구 뒤에 숨어 있는 온갖 소부르주아 이론들에 찬성할 것인가 반대할 것인가를 둘러싼 투쟁의 형태를 띠게 된다.”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의 민족 강령』, 1913년)
우리는 언제나 억압받는 민족의 권리를 그 억압자들에 맞서 옹호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억압받는 민족의 부르주아지가 강요하는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거나, 노동계급의 이해관계를 그들의 요구에 종속시켜야 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반대로, 억압받는 민족의 노동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임무는 무엇보다도 자기 민족의 부르주아지에 맞서 단호한 투쟁을 전개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 부르주아지의 선동적 주장을 폭로하고, 억압받는 민족의 노동자들을 ‘자기’ 부르주아지에게 종속시키려는 모든 시도에 맞서 싸워야 한다.
레닌은 1914년 2월부터 5월 사이에 집필한 『민족자결권에 대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부르주아지는 언제나 민족적 요구를 가장 앞세우며, 그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에게 이러한 요구는 언제나 계급투쟁의 이해관계에 종속된다.”
유대인들은 차르 체제의 러시아에서 가장 끔찍한 억압을 겪었다. 유대인 노동자들은 노동자로서, 그리고 유대인으로서 이중으로 억압을 받았다. 볼셰비키는 유대인의 완전한 권리를 옹호했으며, 반유대주의적 포그롬[역자: Pogroms, 대박해. 특정한 민족집단(주로 유대인)에 대하여 일어나는 학살과 약탈을 수반하는 군중 폭동을 가리키는 말]을 자행하는 세력에 맞서 무기를 들고 싸웠다. 그럼에도 레닌은 유대인 분트(역자: Bund. 유대인 사회주의 조직)가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안에서 자신들에게 특별한 지위를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한 시도를 가장 단호한 어조로 비판했다. 그는 분트가 유대인 노동자들을 독점적으로 대표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레닌은 그러한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은 프롤레타리아의 노선에서 벗어나 노동자들을 부르주아지의 정책에 종속시키는 일이라고 말했다. 분트주의자들은 이에 크게 반발하며 레닌이 유대인들의 문제에 둔감하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레닌은 이에 개의치 않았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단결과 국제주의의 원칙은 민족 문제보다 언제나 우선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제 레닌의 민족 억압에 대한 입장과, 일반적인 의미의 ‘정체성 정치’, 특히 페미니즘에 대한 문제를 서로 비교해 보자. 부르주아 및 소부르주아 페미니스트들은 부르주아 민족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성별 문제가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하며, 노동계급 여성은 무엇보다도 먼저 모든 여성과 자신을 동일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특히 페미니즘 운동을 주도하며 군림하는 ‘똑똑한’ 부르주아 및 소부르주아 여성 지식인들이 포함된다.
이에 대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우리는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 투쟁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여성’의 대의를 위해 싸운다는 명분 아래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추구하는 부르주아 및 소부르주아 여성들의 지도력에 우리 자신을 종속시킬 생각은 없다. 노동계급 여성의 이해관계는 노동계급 남성의 이해관계와 근본적으로 동일하다. 이들 모두는 은행가들과 자본가들에게 억압받고 착취당하며, 그 은행가와 자본가가 어떤 성별이든 노동계급에게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노동계급 여성은 노동자로서뿐만 아니라 여성으로서도 억압받으며, 따라서 우리의 강령적 요구 속에서 반드시 제기되어야 할 고유한 문제들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노동계급 여성의 요구를 위해 부르주아 및 소부르주아 세력을 신뢰할 수는 없다. 궁극적으로 그들의 이해관계는 노동계급 여성의 이해관계와 일치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서로 대립하는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민족 문제의 경우, 노동자· 농민들과 민족 부르주아지 사이의 적대는 흔히 내전의 형태로 나타났다. 이 경우에 볼셰비키는 어떤 입장을 취했는가? 러시아 혁명의 구체적인 사례를 하나 살펴보자. 핀란드의 민족운동은 진보적이었는가, 아니면 반동적이었는가? 볼셰비키는 핀란드인과 폴란드인을 포함한 피억압 민족들에게 민족자결권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야기의 절반에 불과하다. 핀란드에서 볼셰비키와 백군 사이에는 내전이 벌어졌고, 백군은 핀란드 독립의 기치를 내걸고 싸웠다.
물론 볼셰비키에게 충분히 강력한 군사력이 있었다면, 그들은 핀란드에 개입하여 부르주아 민족주의자들을 분쇄하고 노동자들을 지원했을 것이다. 그리고 핀란드 노동계급의 승리는 독립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핀란드가 소비에트 공화국에 편입되는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트로츠키는 한때 피억압 민족의 민족주의는 “미성숙한 볼셰비즘의 외피”가 될 수 있다 쓴 바 있다. 이 말은 특정한 경우에는 전적으로 옳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경우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피억압 민족의 민족주의는 미성숙한 볼셰비즘의 외피가 될 수도 있지만, 마찬가지로 이제 막 태동하는 파시즘의 외피가 될 수도 있다. 이는 구체적인 상황에 달려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세력관계가 달랐다면 핀란드의 민족자결권은 국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이해관계에 완전히 종속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당시 소비에트 공화국은 아직 적군을 보유하지 못했고, 핀란드 혁명은 백군에게 짓밟혔다. 이러한 경우에 핀란드 민족주의를 ‘미성숙한 볼셰비즘의 외피’라 주장하는 것은 전적으로 반동적인 것이 되었을 것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얼마든지 더 들 수 있다.

인종차별과 정체성 정치
미국은 전쟁과 정복, 그리고 노예제라는 길고도 잔혹한 역사의 결과로 형성된, 매우 다양한 구성원을 가진 나라다. 젊은 미국 자본주의가 스스로와 스스로의 미래에 자신감을 갖고 있었고, 끝없이 밀려드는 이민의 물결을 흡수할 수 있었던 시기에는 자유의 여신상에 다음과 같은 문구를 새겨 넣었던 바가 있다: “지치고 가난한 이들, 자유를 갈망하며 서로 몸을 기대고 선 군중을 내게 보내라.”
그러나 이제 상황은 정반대로 바뀌었다. 쇠퇴기에 접어든 미국 자본주의는 도널드 트럼프의 반동적이고, 편협하며, 제노포비아적인 정책 속에서 그 모습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정책은 미국이 외부 세계, 나아가 자본주의의 세계적 위기로부터 자신을 분리하는 것이 불가능한 시점에, 과거의 고립주의 정책으로 회귀하려는 시도를 의미한다.
트럼프의 반동적인 선동의 목적은 실업과 빈곤의 책임을 이민자와 외국인에게 돌림으로써 미국 노동자들을 혼란에 빠뜨리려는 데에 있다. 그 결과 인종차별주의가 강화되고, 이민자와 비백인들 사이에는 공포의 분위기가 확산되었다. 이러한 계층에서는 ‘정체성 정치’라는 사상이 일정 수준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다른 모든 경우와 마찬가지로, 올바른 생각도 극단으로 밀고 나가면 그 반대의 것으로 변한다.
미국에서는 최근의 ‘정체성 정치’ 훨씬 이전부터 ‘정체성’ 개념이 존재해 왔다. 아일랜드계 미국인, 이탈리아계 미국인, 유대계 미국인 등과 같은 정체성 개념은, 아일랜드계 미국인 노동자는 아일랜드계 미국인 자본가와, 이탈리아계 미국인 노동자는 이탈리아계 미국인 자본가와, 유대계 미국인 노동자는 유대계 미국인 자본가와 자신을 동일시해야 한다는 생각을 퍼뜨리는 데 이용되었다. 그리고 보다 최근에는 흑인 노동자와 라틴계 노동자도 각각 흑인 자본가와 라틴계 자본가와 자신을 동일시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논리는 노동자들을 민족적이거나 인종적인 출신에 따라 분열시키고, 그 결과 노동계급 전체를 약화시키는 반동적인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인 청년이 자신의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려 하는 것은, 여러 세대에 걸쳐 흑인들을 멸시하고 그들이 태어나고 살아온 나라의 역사와 문화 속에서 그들에게 어떠한 자리도 허용하지 않았던 제도화된 인종주의에 대한, 이해할 만하고 정당한 반응이다. 마찬가지로, 라틴아메리카의 일부 원주민 집단 역시 오랜 착취와 억압에 지친 끝에 자신의 원주민 정체성에 자부심을 느끼고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를 지키고자 한다.
마찬가지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 민족적 배경(ethnicity), 그리고 성 정체성(gender identity)을 이유로 한 모든 차별과 억압에 적극적으로 반대해야 하며, 결혼제도와 그 밖의 영역에서 남아 있는 모든 반동적 법률을 폐지하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는 우익과 지배계급에 맞선 전반적인 투쟁의 필수적인 일부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가 낳는 모든 억압과 불의를, 그 피해자가 누구이든 간에, 적극적으로 규탄한다. 여성 억압에서부터 환경 파괴, 소민족에 대한 억압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가 낳는 모든 폐해는 우리로 하여금 이 체제에 대한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한 사람에 대한 피해는 모두에 대한 피해와 같다.”라는 기치 아래 서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인류 해방을 위한 투쟁을 포괄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이며, 그 투쟁의 선두에 노동계급을 세운다. 노동계급은 가장 혁명적인 피억압 계급일 뿐 아니라, 생산과 사회에서 특수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자본주의 체제가 직접 만들어 낸 계급이기 때문이다. 모든 형태의 억압에 맞선 투쟁에서 노동계급이 이러한 지도적 역할을 맡는 이유는 노동계급의 생활과 노동 조건 자체에도 있다. 이러한 조건은 사회계급의 분열을 폐지하고, 하나의 민족이나 인민이 다른 민족이나 인민을 억압하는 관계를 없애며, 물론 남성에 의한 여성 억압도 폐지하는 미래 사회주의 사회의 요소들을 맹아적 형태로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적극적인 연대는 정체성 정치에서 말하는 ‘엘라이쉽(allyship, 동맹)’이라는 개념과는 전혀 양립할 수 없다. 엘라이쉽은 정체성 정치가 개인의 주관적 경험의 우선성을 절대시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오직 억압을 직접 경험한 사람만이 그것을 이해하고 그에 맞서 싸울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며, 피억압 집단과 소외 집단의 처지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단지 수동적인 지지자라는 부차적인 역할로 밀려나게 된다.
그러나 이른바 ‘정체성 정치’는 실제로는 여성, 흑인 미국인, 이민자, 원주민, 성소수자(LGBTQ+) 해방의 대의에 해를 끼친다. 정체성 정치는 인종적 분열을 극복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오히려 그 분열을 더욱 심화시키고, 표현의 자유를 질식시키며, 합리적인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정치적 선동가들과 소부르주아 광신자들은 논증 대신 날 선 비난을 퍼부으며, 자신들의 ‘정치적 올바름’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입을 막으려 한다. 그 결과로 사회에는 히스테리적인 분위기가 조성된다.
그들은 정치적·사회적 문제를 피억압 집단의 문제로 환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인종과 성별에 따른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요구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 그러나 실제로 피억압 소수자들이 겪는 문제는 자본주의의 깊은 모순이 낳은 결과이지, 그 원인이 아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요구는 진정한 문제로부터 관심을 돌리고 끝없는 혼란과 분열을 조장할 뿐이다. 또한 그들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피억압자들의 투쟁을 외면한다고 비난한다. 또한 우리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혁명을 그저 기다리고 있을 뿐이며, 현재의 현실적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해답도 제시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전적으로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억압에 맞서기 위한 계급투쟁의 방법을 제시한다. 우리는 모든 불의에 맞서는 전투적 대중투쟁 전술을 제안한다.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는 그대로 둔 채 할당제나 법적 조치 같은 미봉책에만 매달리는 것은 바로 개혁주의적 정체성 정치의 옹호자들이다. 그들은 사람들을 점점 더 작은 집단으로 분열시키고 혼란을 조장함으로써, 억압과 착취의 진정한 원천에 맞서 싸울 힘을 스스로 잃게 만든다. 우리는 단지 억압받는 이들의 문제가 계급 사회의 깊은 모순을 반영한 것이며, 계급적 예속이 존속하는 한 이러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공상에 불과하다는 점을 설명할 뿐이다. 오늘날 억압에 맞서 싸우고, 장차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할 길을 준비할 수 있는 것은 피억압과 피착취 대중의 가장 광범위한 단결뿐이다.
분열의 정치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종차별주의가 중요한 문제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전혀 없다. 인종차별은 언제나 지배계급이 노동계급을 분열시키고 약화시키기 위해 이용해 온 수단이었다. 지배계급은 민족적 배경, 피부색, 언어 등을 이유로 노동계급의 한 집단을 다른 집단과 맞서게 만들어 왔다. 따라서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에 맞선 투쟁은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중요한 과제이며, 그들은 자본에 맞선 투쟁에서 노동계급의 최대한의 단결을 실현하기 위해 언제나 노력한다.
어떤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미국만큼 인종차별에 맞선 투쟁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곳은 없다. ‘블랙 라이브즈 매러(Black Lives Matter)’ 운동의 등장은 수백만 흑인들의 경찰 폭력과 차별, 그리고 인종차별과 맞서 싸우고자 하는 열망을 표현한 것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진보적인 현상이며, 마땅히 지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현상을 이론으로서 설명하려는 경향은 과도한 주장들을 낳았고, 이는 특히 흑인 미국인들의 정당한 권리를 위한 투쟁에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인종주의와 경찰 폭력에 맞서 투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투쟁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방해하고 약화시킬 뿐인 일면적이고 잘못된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여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의심할 여지 없이, 계급적 착취 외에도 인종주의, 성차별, 호모포비아(동성애 혐오), 트랜스포비아(트랜스젠더 혐오) 등 수많은 형태의 억압이 존재한다. 마르크스주의자인 우리는 모든 형태의 억압을 인정하며, 그에 맞서 투쟁한다. 다만 교차성 이론의 문제는 우리를 하나로 묶는 요소보다 우리를 갈라놓는 요소를 더 강조한다는 데 있다. 즉, 각 개인이 경험할 수 있는 무수히 다양한 형태의 억압들과 이른바 ‘특권’들의 조합에 초점을 맞추고, 그 결과 우리 모두가 서로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은 서로 다른 피억압 집단과 노동계급 내부의 여러 계층을 서로 대립시키며, 억압에 맞서 싸우고 계급적 착취를 종식시키기 위해 필요한 집단적이고 전투적인 계급투쟁을 촉진하기는커녕 오히려 가로막는다.
저명한 교차성 페미니스트인 패트리샤 힐 콜린스에 따르면, “모든 집단은 서로 다른 정도의 불이익과 특권을 지니고 있으며”, “맥락에 따라 한 개인은 억압자가 될 수도, 피억압 집단의 구성원이 될 수도 있으며, 동시에 억압자이자 피억압자가 될 수도 있다.” 그녀는 백인 여성이 성별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 동시에 인종 때문에 특권을 누린다는 사례를 제시한다. 이 관점의 문제는, 어떤 사람이 특정한 형태의 억압을 직접 경험하지 않는다면 그는 곧 억압자이며, 다른 사람들에 대한 그러한 억압을 유지하는 데에 이해관계를 가진 존재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억압의 주된 가해자를 개인에게서 찾는 이러한 관점은 피억압자들의 투쟁을 더욱 파편화할 뿐이다. 더욱이 노동계급의 어느 한 계층도 다른 노동계급 계층에 대한 억압을 유지하는 데 아무런 이해관계를 갖고 있지 않다. 오히려 그 정반대이다.
‘교차성론자들’은 자본주의와 부르주아 국가에 맞선 공동의 투쟁으로 모든 피억압자들을 단결시키는 대신, 그 투쟁을 가능한 한 가장 작은 단위로 분해하려 한다. 즉, 흑인 여성을 흑인 남성과 대립시키고, 장애인 흑인 여성을 비장애인 흑인 여성과 대립시키는 식이다. 이처럼 투쟁을 잘게 나누고 분리함으로써 그들은 운동을 분열시키고, 핵심 문제로부터 관심을 돌리며, 서로 다른 피억압 집단을 서로 맞서게 만든다.
그 결과 각각의 집단은 ‘우리의 권리’를 ‘너희의 권리’와 대립시키도록 부추겨진다. 이렇게 운동은 점점 파편화된다. 그 사이 진정한 억압자들인 은행가와 자본가, 언론 재벌과 경찰 수뇌부, 반동 세력과 인종차별주의자들은 사회운동이 무수한 무의미한 다툼과 갈등 속에서 스스로의 힘을 소진하는 모습을 쾌재를 부르며 즐겁게 지켜본다.
그 결과 일부 활동가들은 이른바 ‘특권의 위계’에서 상대적으로 더 높은 위치에 있다는 이유로 다른 활동가들을 공격하게 된다. 예를 들어, 흑인 남성은 흑인 여성에 비해 ‘특권을 가진’ 존재로 규정되는 식이다. 이러한 목록은 끝이 없으며, 그 필연적인 결과는 운동이 수없이 많은 파편으로 원자화되는 것이다. 공통의 적에 맞서 함께 싸우는 대신, 각각의 피억압 집단은 자신이 겪는 특정한 형태의 억압에만 집중하도록 부추겨지고, 다른 모든 피억압 집단과 논쟁하고 대립하도록 내몰린다.
대중적 투쟁을 조직하는 대신, 소수의 활동가 집단은 각기 특정한 쟁점을 둘러싼 고립된 투쟁에 매달리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러한 논리를 끝까지 밀고 나가면 어떠한 조직도 성립할 수 없게 된다. 모든 개인은 저마다 고유하며, 자본주의를 경험하는 방식 또한 각자 다르기 때문이다. 이들이 말하는 ‘앨라이(ally, 동맹자)’나 ‘연대’는 결국 자신들이 주장하는 분열적인 접근법을 가리기 위한 허울에 불과하다.
이러한 사상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결론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 중 하나로 최근 줄리 빈델, 저메인 그리어 등의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의 트랜스젠더 혐오 논란을 들 수 있다. 이들은 트랜스젠더 여성을 향해 "진정한 여성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등 여러 차례 자극적인 발언을 일삼아 왔다. 이것은 개인을 특정한 범주에 속하는 존재로 규정하는 데 집착하는 정체성 정치의 경향을 보여 주는 사례이다. 게다가 양측은 자신들의 견해와 다른 사상에 대해 정치적으로 맞서기보다는, 보이콧, '노 플랫폼(no-platforming, 특정 인사의 발언 기회 박탈)', 시위, 그리고 행사를 무산시키거나 토론을 가로막는 난동 등의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만약 피억압 집단의 각 부문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억압을 경험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똑같은 논리로 각각의 개인 역시 모든 것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며, 따라서 그 누구도 나의 문제를 이해할 수 없고, 그것은 오직 나만의 개인적인 문제라는 주장도 똑같이 정당화할 수 있다. 이러한 논리는 결국 우리를 레닌이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서 매우 철저하게 논파한 주관적 관념론의 철학적 수렁으로 되돌아가게 만든다. 교차성 이론에 내재한 주관적 관념론은 패트리샤 힐 콜린스의 다음 구절에서 가장 노골적인 형태로 드러난다: “지배의 총체적 매트릭스(overarching matrix of domination) 안에는 여러 집단이 존재하며, 각 집단은 서로 다른 정도의 불이익과 특권을 경험하고, 그에 상응하는 부분적인 관점을 형성한다…… 어느 한 집단도 명확한 시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 어느 한 집단도 절대적인 ‘진리’를 발견할 수 있게 해 주는 이론이나 방법론을 가지고 있지 않다.”
계급적 관점의 포기
‘교차성’의 지지자들이 발표한 어떠한 글이나 연설에서도 계급에 대한 언급은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노동계급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드물게 계급이 언급되는 경우에서마저 그것은 마르크스주의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하나의 차별 형태(‘계급차별’)로만 다루어진다. 그것도 수많은 차별 가운데 하나일 뿐이며, 결코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노동계급은 더 이상 모든 부를 생산하며 생산과정에서 착취당하는 계급이 아니라, 그저 ‘차별받는’ 또 하나의 집단으로 취급될 뿐이다. 이것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혁명의 관점을 완전히 버린 전직 좌파들의 또 하나의 안타까운 사례이다.
억압의 근원을 계급사회에서, 그리고 자본주의 아래에서는 은행가와 자본가의 경제적 지배에서 찾는 대신, ‘교차성론자’들은 사람들의 사회적 행동과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에서 찾으려 한다. 그들의 관점에 따르면 오늘날 여성 억압은 자본주의적 임금노예제의 결과가 아니라, 차별적인 언어의 사용이나 조직 내부의 차별적인 구조에서 비롯된 결과이다.
구 식민지 국가들에서는 스탈린주의의 이념적 파산의 결과로, 중국 혁명과 쿠바 혁명의 승리 이후 여러 집단과 경향은 보다 새롭고 독창적인 해방의 철학을 ‘마르크스주의 정통’의 바깥에서 모색하게 되었다. 이러한 이른바 해방 철학은 구 식민지 국가들의 해방을 위한 열쇠가 유럽중심주의적 사유와 언어를 극복하는 데에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인식론적·사상적 탈식민화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이들 국가의 역사를 ‘독창적인’ 방식으로 이해하는 토대가 되며, 바로 거기서 해방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개량주의적이고 반동적인 사상은 우리에게 부르주아지와 그들의 잔혹한 착취 방식에 맞서 싸울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론적 차원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할 것을 권유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필요한 것은, 사회의 토대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한 혁명이 아니라, 개혁 그리고 사람들의 의식 및 행동의 변화이다. 그들의 목표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인 의미에서 개인의 자기실현을 추구하는 데 있다. 자본주의가 존속하는 한 착취와 억압 또한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말이다.
혁명적인 정당은 노동계급이 권력을 장악하고 사회를 변혁하기 위한 도구이다. 그것은 새로운 사회의 축소판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를 창조하기 위한 촉매이다. 물론 우리 조직 내부와 정치 활동에서 나타나는 모든 형태의 억압에 맞서 싸운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교차성론자들은 차별적 행위가 완전히 제거된 ‘순수한’ 조직을 건설하고, 그러한 조직이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상상한다. 그들은 어떠한 조직도 그것이 존재하는 사회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 아래에서 여성에 대한 억압이 존재하는 한, 대부분의 조직에서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대표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우리는 여성과 다른 피억압 집단이 참여하는 데 존재하는 모든 장벽을 제거해야 하지만, 계급사회 자체가 존속하는 한 계급사회가 가하는 압력 자체를 제거할 수는 없다. 결국 교차성론자들은 현재 사회와 그 차별적 행태를 실제로 종식시킬 수 있는 조직을 건설하는 대신, 낡은 사회의 틀 안에서 미래 사회의 유토피아적 원형을 만드는 데 모든 역량을 쏟아붓게 된다. 이러한 관념론적 구상은 사회에 대한 유물론적이고 변증법적인 이해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념론적 사고는 이 운동의 일부가 제시하는 ‘개혁’의 내용에서도 드러난다. ‘성중립적 언어’, ‘성중립적 양육’ 등이 그것이다. 교차성론자들은 이러한 수단을 통해 억압의 근원이 결국 잘못된 사상에 있으며, 그것은 단지 교육을 통해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철저히 개량주의적이며 유토피아적인 관점이다.
‘다양한 페미니즘 학파’?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는 여러 나라에서 억압과 차별에 맞선 대중운동이 일어나는 것을 목격했다. 경찰의 젊은 흑인들 살해에 맞서 시작된 ‘블랙 라이브즈 매러’ 운동에서부터, 아일랜드의 동성결혼 국민투표, 폴란드의 낙태권 옹호 운동, 그리고 아르헨티나와 멕시코 등 여러 국가에서 벌어진 여성폭력 반대 운동에 이르기까지 그러하다. 이러한 운동들은 우리가 결합해야 할 진보적인 정서를 반영하며, 체제 전체에 대한 문제 제기의 요소를 내포한다.
스페인에서는 3월 8일 총파업과 '라 마나다(La Manada, 늑대 무리)' 집단 성폭행범들에 반대하는 운동이 모두 페미니즘의 이름 아래 수십만, 더 나아가 수백만 명이 참가하는 규모로 전개되었다. 대중의 눈에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는 ‘여성의 평등을 위한 투쟁’이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3월 8일 ‘페미니스트 파업’을 호소한 단체들의 지도자들은 페미니즘 이론을 신봉하는 의미에서의 페미니스트들이다. 그들은 여성해방을 위한 투쟁은 ‘횡단적’이어야 한다(즉, 계급과 정치적 노선을 가로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남성은 기껏해야 ‘동맹자(allies)’일 뿐이며, 파업에 참가해서는 안 되고 여성 파업 참가자들의 자리를 대신 메우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더해 여성에 대한 자본주의적 착취는 노동력 재생산 과정에서 이루어진다고 주장하며, 따라서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을 요구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운다. 하지만 이 운동이 대중 운동으로 확산됨에 따라, 실제 참여자 대다수는 이러한 사상이나 주장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부 동지들은 우리도 ‘페미니스트’라는 명칭을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그렇게 규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기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옳지도 않으며, 필요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우리의 글이나 대중운동에 대한 개입을, ‘페미니즘’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둘러싼 논쟁으로 시작하는 것은 중대한 정치적 실수가 될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다른 모든 대중운동에 개입할 때와 마찬가지로, 그 운동의 가장 진보적이고 혁명적인 측면을 활용하면서 우리의 강령과 전략을 긍정적인 방식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운동의 지도부가 내세우는 잘못되고 역효과를 낳는 사상들에 대해서 우리는 동지적인 방식으로 비판해야 한다. 동시에 운동의 대오를 고무하는 혁명적 정신과는 결합해야 한다. 이것이 지금까지 2017년 3월 8일을 중심으로 대중운동이 전개되기 시작한 이탈리아와 멕시코, 그리고 스페인에서 우리가 취해 온 방식이다. 우리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부르지 않았다는 사실은 우리의 활동에 결코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많은 젊은 남성과 여성들은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실제로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면서도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른다. 그들은 사회의 불평등을 인식하기 시작했으며, 그들이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부를 때 그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여성 억압에 반대하고 평등한 사회를 원한다는 것이다. 이는 그들을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사상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페미니스트들은 흔히 사회 대부분의 문제를 ‘가부장제’의 탓으로 돌린다. 여성의 예속이 계급 지배와 함께 등장하여 수천 년 동안 존재해 온 가장 오래된 형태의 예속이라는 점은 사실이다. 이러한 끔찍한 예속 상태를 완전히 종식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사회의 근본적인 재구성을 통해서뿐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근본적 변화는 오직 노동계급의 단결된 혁명적 행동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곧 계급으로서의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남녀 노동계급의 행동적인 단결을 전제로 합니다. 페미니스트들은 가부장제를 계급사회와는 별개의 구조로 보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여성해방을 위한 투쟁이 노동계급 해방을 위한 투쟁과는 별개의 것이라는 필연적인 결론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생각은 분열을 조장하는 반동적인 사상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상은 자신을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나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비록 보다 완화된 형태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존재한다.
여성의 완전한 해방은 여성 억압의 토대가 되는 착취를 폐지할 사회혁명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자본주의 아래에서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한 투쟁을 무시한다는 뜻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우리는 여성에 대한 아주 사소한 형태의 차별과 억압이라도 모두 맞서 싸울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모든 노동자의 전투적 단결을 실현하기 위한 선행조건이다.
때때로 페미니즘에는 다양한 사상적 학파가 존재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데, 그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아나키즘에도 여러 다양한 흐름이 존재하며, 그 가운데 일부는 다른 것들보다 마르크스주의에 더 가까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와 아나키즘 사이에 분명한 경계선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아나키즘에는 여러 다양한 사상적 조류가 존재하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두 동일한 종류의 편견을 공유하고 있다. 공산주의에 더 가까운 아나키스트들을 설득하는 방법은 이러한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 척하거나, 아나키스트들에게 “보라! 우리는 사실 모두 같은 목표를 위해 싸우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성실한 아나키스트의 혼란을 해소하는 길은 아나키즘의 혼란스럽고 비과학적인 사상과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의 명확하고 과학적인 사상의 차이를 설명하는 데에 있다.
러시아 혁명 당시에는 스스로를 ‘공산주의적 아나키스트’라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혁명의 경험을 거치면서 아나키스트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프롤레타리아 분자들은 볼셰비키주의에 더욱 가까워졌고, 혁명과 내전에서 볼셰비키와 나란히 싸웠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공산당에 입당했다. ‘아나코-공산주의(아나코-코뮤니즘)’ 경향은 공산주의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일종의 중간 단계, 또는 과도기적 단계를 대표했다.
마찬가지로, 어떤 종류의 페미니즘은 다른 종류의 페미니즘보다 더 진보적일 수도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여성의 완전한 해방을 위해 우리가 가진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투쟁해야 한다. 그렇다면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명확하게 답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용어는 보수주의자와 자유주의자, 진보주의자와 좌파 모두에 의해 사용된다. 여성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옹호하는 데에도 사용되며, 동시에 평등과 인류의 해방을 위해 투쟁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이 용어를 사용한다. 실제로 스페인에서는 3월 8일에 집권 우파 정당마저도 자신들 역시 ‘페미니스트’임을 보여 주기 위해 보라색 페미니스트 리본을 착용했다. 옥스퍼드 사전은 페미니즘을 성평등을 근거로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이라 정의한다. 이 정의는 페미니즘이라는 용어의 핵심적인 문제를 보여 준다. 즉, 계급적 관점에서는 사실상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오히려 그것이 무엇이 아닌지를 통해 가장 잘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여성 억압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따라서 그것이 어떻게 투쟁을 통해 극복되고 폐지될 수 있는지에 대해 아무런 답도 제시하지 못한다. 서로 다른 여러 페미니즘은, 답을 제시하는 드문 경우에서조차, 저마다 서로 다른 해답을 내놓는다. 페미니즘은 여성 억압의 근본 원인인 자본주의와 계급사회 일반을 폐지하기 이전에도 어떻게든 여성 억압을 제거할 수 있다는 생각을 내포하고 있다. 페미니즘은 계급적 경계를 분명히 하는 대신 그것을 흐리게 만든다. 서로 다른 모든 종류의 페미니즘은 근본 원인이 아니라 증상만을 바라볼 뿐이다.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우리는 있는 그대로를 말해야 한다. 우리는 페미니즘과 분명한 경계선을 그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물론 ‘성평등을 근거로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좋은’ 형태의 페미니즘조차도 계급의 경계를 넘어선 허위의 단결 의식을 만들어 내고 혼란만을 초래할 뿐이다.
따라서 스스로를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는 것은 모순적이다. 오히려 그것은 역효과를 낳으며,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는 성실한 젊은 계급투사들에게 이 문제를 명확히 이해시키는 데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왜 우리가 페미니스트가 아닌지를 공개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그것은 이러한 사람들을 마르크스주의로 이끄는 데 도움이 되기 위한 것이며, 동시에 소부르주아적이고 비계급적인 사상과 철학적 관념론이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대오 속으로 스며들 수 있는 통로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이다.
비록 우리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본주의 아래에서 노동자로서 그리고 여성으로서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는 광범위한 노동계급 여성들이 느끼는 깊은 분노에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무관심하다는 인상을 주어서도 안 된다. 또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여성해방을 위한 투쟁을 먼 훗날의 사회주의 미래를 위한 부차적인 것으로 미루고 있다는 그릇된 생각에 조금이라도 힘을 실어주어서도 안 된다. 모든 모순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의 기치 아래 새로운 세대의 여성들이 현존하는 사회 상태에 맞선 투쟁에 나서고 있다. 이러한 구체적인 상황에서 출발하여 그 혁명적 잠재력을 인식함으로써, 우리는 여성에 대한 오랜 억압을 자본주의 쇠퇴기라는 시대의 구체적 조건과 결합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노동조합 내에서 활동하는 혁명가로서 우리는 동료 노동자들의 일상적인 투쟁에 동참하는 한편, 투쟁적인 노동조합과 사회주의적 정책을 요구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우리는 여성들의 모든 대중 운동에 참여하여 그 운동이 가장 전투적인 성격을 띠도록 노력해야 하며, 당면한 요구 사항들을 사회의 근본적 변화라는 과제와 결합시켜야 한다. 지배를 영속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피억압 계급을 분열시키려 하는 자본주의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기 위해서는 단결이 필수적임을 강조하면서, 여성들의 민주적 열망 및 평등을 위한 투쟁과 억압적 체제에 맞선 모든 노동자의 공동 투쟁이라는 이념을 연결해야 하며, 그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스스로를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는 것은 결국 마르크스주의가 평등을 위한 투쟁을 포괄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주게 된다. 스탈린주의가 그러하지 못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마르크스주의의 유산을 되찾기 위해 스탈린주의에 맞서 투쟁하는 것처럼, 이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해야 한다. 우리는 스탈린주의는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며, 스탈린주의 관료 체제는 사회주의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마찬가지로 여성, 동성애자 등을 바라보는 스탈린주의의 관점 역시 마르크스주의와는 아무런 공통점도 없다고 주장해야 한다.
여성이라는 범주는 정의상 모든 계급의 여성을 포함한다. 그러나 이들 계급은 서로 화해할 수 없는 이해관계를 지니고 있다. 페미니즘은 이러한 결정적인 계급적 구분과 모순을 흐리기 때문에, 계급 분석을 출발점으로 하는 마르크스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 마르크스주의로 나아가고 있는 페미니스트들을 설득하려면, 우리의 원칙을 절대적으로 견지하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다. 우리는 여성의 완전한 해방은 오직 계급적 단결과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해야 한다.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들 역시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지만, 우리는 페미니스트는 아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는 우리가 그들의 투쟁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여성의 권리를 지지한다는 점을 동지적인 방식으로 설명해야 한다. 다만 우리는 여성의 권리가 분열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을 통해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우리는 차별과 불평등에 맞선 모든 투쟁의 최전선에 서야 하며, 평등의 대의를 전진시키고 모든 형태의 억압과 차별에 맞서는 가장 작은 요구라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 동등한 가치의 노동에 대해 동일 임금을 보장하는 보편적 고용
- 긴축 정책의 철폐(긴축은 여성에게 불균형적인 타격을 주며, 임금 삭감을 초래하고 사회 서비스 부족을 메우기 위해 아동 및 노인 돌봄과 같은 가사 노동을 여성에게 전가함)
- 낙태권 보장
- 가족계획, 낙태 시술, 가정폭력 피해자 지원 센터 이용 등을 포함하는, 모두를 위한 제한 없는 양질의 무료 의료 서비스
- 전액 유급이 보장되는 육아휴직
- 대규모 공공주택 건설 프로그램
- 실제 근무 시간을 포괄하는, 양질의 무료 보육 시설 확충
- 시설 입소 및 재가(방문) 형태를 모두 아우르는 양질의 무상 노인 돌봄 서비스
- 무료 케이터링(음식 공급) 및 세탁 서비스 제공
- 직장 및 학교 내 양질의 무료 구내식당 운영
- 여성 폭력에 대한 반대 및 투쟁
그러나 직장에서의 투쟁이 성공하기 위한 선결조건은 남성과 여성 노동자가 노동자로서 단결하는 것이다. 가장 근본적인 경계선은 마르크스주의가 사회를 성별이 아니라 계급의 관점에서 설명한다는 점이다. 사회에서 가장 근본적인 분열은 노동자와 자본가, 피착취자와 착취자 사이의 분열이다. 다른 형태의 억압이 존재한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러한 억압 가운데 어느 하나도 자본주의 내부에서 해결될 수는 없다.
다른 모든 문제(임금, 연금, 주택, 의료, 노동조건)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아래에서 전진을 쟁취하기 위한 일상적인 투쟁은 자본주의를 타도하기 위한 준비 과정에서 노동계급을 동원하고 조직하는 유일한 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여성 노동자들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우리는 물론 페미니즘의 한계를 이해하기 시작한 페미니스트들이 있다는 사실을 환영한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인 경향은 일관된 혁명적 계급 관점을 최종적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나아가는 과도기적 단계로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여성의 완전한 해방은 사회주의 혁명의 승리를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으며, 그렇지 않다면 결코 실현될 수 없을 것이다.
‘용어상의 급진주의’
평등을 위한 진정한 투쟁 대신 우리에게 제시되는 것은 인위적인 할당제이다. 사회의 혁명적 재구성을 통한 해방을 위한 투쟁 대신 우리에게 제시되는 것은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다. 이는 결국 끝없이 사소한 단어와 의미를 둘러싼 논쟁으로 귀결된다. 즉, 이런저런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는 주장, ‘성별에 기반한 언어’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 등 끝없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행동 대신 ‘담론’을 앞세우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진정한 정신에 따라, 일부 국가에서는 스스로를 ‘좌파’나 심지어 ‘마르크스주의자’라 칭하는 이들이 언어를 비틀기 위한 현란한 말장난을 일삼으며 끝없는 시간을 낭비해 왔다. 그들은 남성형과 여성형을 중화하려고 하다가 스페인어의 ‘compañer@s’, 이탈리아어의 ‘compagn*’와 같은 기형적인 표현들을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언어유희는 여성이나 흑인, 또는 그 밖의 누구의 해방을 위한 투쟁도 조금도 전진시키지 못한다. 그것은 가장 조악하고도 우스꽝스러운 형태의 ‘생색내기식 행위(tokenism)’에 불과하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미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개인의 의식을 변화시키면 물질적 조건도 변화시킬 수 있으며, 혁명을 위해서는 먼저 사람들을 ‘교육’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비판했다.
“이러한 공산주의적 의식을 대규모로 형성하기 위해서나 그 대의 자체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나, 사람들의 대규모 변화는 필연적으로 실천적 운동, 즉 혁명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변화이다. 따라서 이 혁명은 지배 계급을 타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지배 계급을 타도하는 계급 또한 혁명을 통해서만 비로소 오랜 세월에 걸쳐 쌓인 온갖 오물을 씻어내고 사회를 새롭게 건설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출 수 있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다.”
언어에 대한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집착은 문제 전체를 거꾸로 뒤집어 놓는다. 억압이라는 현실은 언어를 바꾼다고 해서 조금도 바뀌지 않는다. 그러한 생각은 철저히 관념론적인 접근을 드러낼 뿐이다. 언어는 현실 세계의 변화를 반영하면서 변화하고 발전하지만, 그 반대는 명백히 사실이 아니다.
단어를 둘러싼 말다툼은 대학 세미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향이다. 그곳의 사람들은 마치 자기 꼬리를 쫓는 개처럼, 특별한 내용도 없는 끝이 없는 논쟁에 얼마든지 시간을 쏟아부을 수 있다. 독일의 시인 괴테는 “태초에 있었던 것은 말씀이 아니라 행동이었다(In the beginning was the Deed).”라고 썼다. 여성해방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억압과 차별에 맞선 행동이다. 그러나 성공적인 대중행동의 선결조건은 바로 모든 노동자의 공통된 예속 위에 자신의 지배를 유지하는 자본가들에 맞서 노동계급 여성과 남성이 전투적으로 단결하는 것이다.
소부르주아 ‘급진주의자’들은 이른바 퀴어 이론과 같은 무언가에 늘 호들갑을 떨고 있어야만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글은 이 이론을 상세히 분석할 자리가 아니다. 그것은 별도의 문서와 글에서 다룰 수 있다. 여기서는 이것이 가장 야만적인 형태의 철학적 관념론에 뿌리를 둔, 철저히 반동적인 사상이라는 점만 말해 두면 충분하다. 이 이론은 억압에 맞선 투쟁을 약화시키는 분열을 조장하며,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필연적으로 반동 세력에게 이로움을 안겨 준다.
마르크스주의는 자연, 사회, 그리고 인간 행동을 분석하는 유일하게 진정으로 과학적인 방법인 철학적 유물론에 기초한다. 좋든 싫든 간에, 인간을 포함한 동물 세계에서 성(sex)은 정상적인 번식 방식이다. 지렁이나 특정 어류처럼 동물 세계에 무성 생식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는 진화가 진행됨에 따라 사라지며, 포유류 사이에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성은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결정하거나 고안해 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진화의 산물이다. 인간의 의지로 성(sex)을 인위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자의적일 뿐만 아니라 철학적으로나 과학적으로도 틀린 것이다.
성의 근본적인 구분은 남성과 여성 사이의 구분이다. 이는 생식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결정된다. 이러한 구분은 그 자체로 분업의 씨앗을 품고 있으며, 분업은 특정 단계에 이르면 사회 내 계급 분화의 토대가 된다. 가부장적 가족 관계에서 드러나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종속은 계급 사회의 시작과 궤를 같이하며, 계급 사회 자체가 철폐된 후에야 비로소 완전히 근절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여성과 사회의 모든 피억압 계층의 진정한 해방을 위해 투쟁한다. 그러나 해방은 단지 성별(gender)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결국에는 철학적 관념론의 공허한 사변이 아니라 물질적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퀴어 이론의 셀 수 없이 많고 기이한 여러 변형들(사실 이것을 이론이라고까지 불러 주는 것 자체가 과분하다)에는 공통된 특징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이들은 성별(나아가 성 자체까지)를 순전히 사회적 구성물로 규정하면서 모든 생물학적이고 물질적인 측면을 부정한다. 다음 단계에서는 상상 속에서 거의 무한한 수의 젠더를 만들어 내고, 모든 사람이 그 가운데 하나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남성과 여성 외에도 그 중간적인 형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러한 존재는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콜럼버스 이전의 아메리카에서는 이러한 사람들이 하나의 특별한 사회집단으로 여겨졌으며, 존중을 받았다.
현대 과학은 사람들이 성을 전환할 수 있게 해 주며, 그것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우리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과 편협에 전적으로 반대한다. 또한 누구든 자신의 정체성을 원하는 대로 규정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도 아무런 반대가 없다. 그러나 이것을 사회를 변화시키는 수단으로 제시하게 되면, 결국 해방은 순전히 개인의 생활방식 선택의 문제라는 생각으로 귀결되며, 이러한 생각은 지배계급에게 매우 편리한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고방식의 부정적인 결과를 일부 급진적 페미니스트들과 일부 트랜스 권리 활동가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추악한 분열과 격렬한 갈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전개는 어떤 의미에서도 억압에 맞선 투쟁에 기여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것은 철저히 반동적이며, 반드시 맞서 싸워야 한다.
노동운동 내부의 ‘정체성’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여성 해방을 위해 투쟁하며, 현행 자본주의 체제의 틀 안에서라도 여성의 지위를 개선하는 데 기여하는 진보적 조치라면 그것이 아무리 부분적인 것이라 해도 옹호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투쟁을 우리 고유의 방식, 즉 프롤레타리아 계급 투쟁의 방식으로 수행할 것이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여성의 진정하고 완전한 해방은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하는 것, 다시 말해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를 위한 선행조건은 노동계급의 단결과 자신의 혁명적 과업의 자각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모든 형태의 억압과 차별에 반대하며 이에 맞서 싸운다. 그러나 억압과 차별에 반대하고 투쟁할 때, 우리는 우리의 주된 목표가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이며, 이는 무엇보다도 노동계급의 단결을 수호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성별, 인종, 언어, 종교 등의 모든 차이를 넘어 노동계급의 완전한 단결을 지지한다. 노동자들의 단결을 유지하고 그들의 계급 의식을 고취하는 것은 그 무엇이든 진보적이다. 반면, 어떤 이유로든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는 것은 반동적이며 반드시 이에 맞서 싸워야 한다. 이는 우리가 반드시 견지해야 할 원칙이다. 여성에 대한 억압, 특히 노동계급 여성에 대한 억압은 물론 환경 파괴나 민족 억압과 같은 자본주의의 다른 폐해들은 모두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일부이다. 가사 노동의 노예 상태나 노동계급 여성이 겪는 ‘이중 부담’ 없이는 자본주의는 존재할 수 없다. 거대 다국적 기업의 이윤 추구로 인한 지구적 파괴 없이는 자본주의가 존재할 수 없다. 또한 자원을 약탈하고 다른 강대국에 맞서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제국주의 열강이 소수 민족이나 약소국을 예속시키는 일 없이는 자본주의가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이 모든 폐해를 종식시킬 유일하고 실질적인 길은 노동계급이 주도하는 사회의 사회주의적 변혁뿐이다.
노동운동의 관료들은 서로 다른 노동자 집단을 상호 대립시키는 방법을 터득해 왔으며, 노동계급 내부의 여러 부문 사이에 임금 격차가 존재하도록 방치해 왔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안락한 삶과 사용자들과의 타협을 추구하면서, 일부 노동자들에게 양보를 얻어내는 대가로 다른 노동자 집단을 팔아넘긴다. 점점 더 많은 나라에서 ‘적극적 우대조치(positive discrimination)’는 노동운동의 지도적 직위를 경력주의적 인물들로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관료들에 의해 조직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성별이나 민족적 배경을 내세워 출세를 도모하며, 우파 관료들의 지원과 비호를 받는 가운데 좌파 후보들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다.
관료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여성, 흑인 등을 위한 ‘할당 의석’을 설치하는 데 적극적이다. 특히 노동조합 관료들은 이러한 장치를 이용하여 선출기구의 구성을 희석시키려 한다. 그들은 이른바 ‘특수집단’을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경력주의적 관료 집단을 기반으로 삼으며, 이들은 이러한 후원을 통해 조직 내에서 승진의 사다리를 올라간다. 그리고 자신들의 ‘의제’를 추진할 자율성만 보장된다면 기꺼이 지도부를 지지한다. 이러한 ‘특수집단’에 ‘대표성’을 부여한다는 명분 아래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은 오히려 대표성이 더욱 떨어지는 지도부의 형성이다. 이들은 실제 정치적 입장을 기준으로 선출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할당제를 충족시키기 위해 선출될 뿐이다.
성별이나 민족성을 가장 중요한 문제로 내세우는 것은 사람들을 계급이 아니라 다른 기준에 따라 분열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는 노동계급에게 극히 부정적이다. 우파 노동조합 지도자들, 특히 개혁주의자들과 좌파 개혁주의자들이 어디에서나 ‘정치적 올바름’과 ‘정체성 정치’를 이용해 계급투쟁과 노동계급이 직면한 진정한 문제들로부터 관심을 돌리려 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들은 전투적인 계급투쟁을 통해 억압에 맞서 싸우는 대신, 언어의 문제에 집중한다.
이러한 해로운 사상들은 노동조합 관료층 내 가장 반동적인 세력이 휘두르는 무기이다. 이들의 주된 역할은 노동계급을 감시·통제하고 계급 투쟁의 범위와 효과를 제한하는 것이다. 징계 조치, 투쟁적인 현장 대표(shop steward)의 해임, 제명 등 관료층이 전통적으로 사용해 온 감시 및 탄압 수단에 이제 새로운 방식이 더해졌다. 바로 ‘정체성 정치’ 광신자들에 의한 위협과 마녀사냥이다.
영국의 한 노동조합 대회에서는 정체성 정치의 지지자들이 여성이 남성을 상대로 제기한 괴롭힘(harassment) 혐의는 해당 여성의 진술만으로 자동적으로 사실로 인정해야 하며, 그 밖의 어떠한 증거도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결의안을 제출한 적이 있었다. 이에 한 남성 대의원은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나는 현장조합 간부이다. 만약 나를 내쫓고 싶어 하는 여성 상사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그녀에게는 매우 쉬운 일이 될 것이다. 나를 괴롭힘으로 고발하기만 하면 나는 즉시 해고될 것이고, 노동조합도 나를 변호할 수 없게 된다.” 이 경우에는 해당 결의안이 부결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이 지닌 위험성은 분명하다.
이들이 심각한 도전과 맞닥뜨리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논쟁에서 승리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정체성 정치의 옹호자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음모에 감히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즉시 인종차별주의자, 여성혐오자, 또는 그들이 생각해 낼 수 있는 온갖 낙인으로 매도된다. 그 결과, 조작된 혐의를 근거로 좌파 노동조합 활동가들을 마녀사냥하는 난동과 악의적인 비방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대한 항의는 상대방에게 가장 터무니없는 모욕과 욕설을 퍼붓는 데 주저하지 않는 정체성 정치 옹호자들의 고함과 야유에 곧바로 묻혀 버린다.
할당제의 원칙은 실상 가장 노골적인 형태의 선거 조작이다. 적지 않은 우파 인사들이 자신이 이 소수집단이나 저 소수집단을 대표한다는 명분으로 선출되어 왔다. 그러나 사람들은 차별을 옹호한다는 비난을 받을까 두려워 모두 침묵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토니 블레어가 ‘여성 전용 후보 명단(all-women shortlists)’을 적극 활용해 출세주의적인 의원 후보들을 선출하고, 당내 좌파를 밀어내는 데 열을 올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제도를 처음 밀어붙인 것은 적극적 우대조치 의제의 일환으로 이를 주장했던, 유행을 좇는 이른바 ‘좌파’들이었다. 그들은 결국 우파에게 스스로 무기를 쥐여 준 셈이다. 노동당 우파는 또한 민족 문제를 이용해 제러미 코빈을 약화시키려 했다. 그들은 “각 민족이 대표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전국집행위원회(NEC)에 웨일스와 스코틀랜드를 각각 대표하는 의석 두 개를 추가로 신설할 것을 제안했다. 참으로 공교롭게도 당시 스코틀랜드 노동당과 웨일스 노동당은 모두 우파가 장악하고 있었다.
자신의 입지를 증명하고 스스로를 가장 페미니스트적인 세력으로 내세우려는 좌파 개량주의자들은 이 문제를 더욱 강력하게 주장한다. 그들은 여성이나 기타 집단을 위한 할당제와 특별 대우를 요구한다. 『포데모스(Podemos)』나 『모멘텀(Momentum)』 같은 단체들은 전통적인 노동운동보다 이 문제에 대해 훨씬 더 나아가는데, 이는 이들 조직에 소부르주아적 영향이 미치고 있음을 반영한다. 할당제가 초래하는 반동적 결과 중 하나는 노동계급 내부의 분열과 경쟁을 심화시킨다는 점이다. 자본주의의 위기가 첨예화되고, 모든 정부가 긴축과 복지 삭감을 추진하는 현 시기에는 여러 반동적 사상이 노동계급의 후진적인 일부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들은 우리의 문제가 자본주의 그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소수 민족, 이민자, 권리를 주장하는 여성 등의 존재 때문이라는 반동적인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파시스트 및 극우 반동 세력이 선전하는 논리의 토대이다. 즉, 소수 민족이나 성별 등을 위한 할당제 때문에 일자리나 보육 시설이 부족하고 대학 진학이나 사회적 혜택을 누릴 기회가 제한된다는 식의 주장이다. 이 모든 것은 노동계급 내부에 인종차별과 분열이라는 독소를 퍼뜨리는 결과를 낳는다. 게다가 할당제를 통해 선출된 이들은 언제나 ‘2류’로 간주되기 십상이며, 그들의 발언은 쉽게 묵살당할 수 있다. 사람들은 그들이 정당한 대표성을 갖춘 것이 아니라 단지 여성, 흑인,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혹은 특정 할당제 덕분에 선출되었을 뿐이라고 치부해 버리기 때문이다.
브라질에서는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좌파 진영의 절대다수가 대학 입학 할당제 등을 도입하기 위해 인구 전체를 ‘민족(ethnicity)’에 따라 구분하려는 터무니없는 제안에 굴복하고 말았다. 이는 우리 브라질 동지들이 단호하게 반대해 온 사안이다. 그들은 사회에 존재하는 막대한 부를 고려할 때 충분히 실현 가능한 목표인 모두를 위한 교육, 의료, 주택 등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자원을 희소한 것으로 전제하고, 그 희소한 자원을 집단별 비율에 따라 나누어 갖기 위해 다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른바 적극적 우대조치, 할당제, 대표성 정치, 그리고 이와 유사한 모든 정책에 단호히 반대한다. 노동운동에 여성과 소수자의 참여를 극대화하는 길은, 온갖 형태의 억압과 차별에 맞서 싸우고 모두를 위한 일자리와 동일 가치 노동에 대한 동일 임금 등을 쟁취하기 위해 우리가 말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투쟁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가장 억압받는 사회 계층을 노동운동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오직 이러한 투쟁적 강령에 기초할 때만 가능하다. 그러나 그렇게 되려면 운동의 지도부는 남성이든 여성이든, 흑인이든 백인이든,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관계없이 가장 뛰어난 투사들의 손에 맡겨져야 한다.
이러한 공허한 상징주의는 처음에는 중간계급 전문직을 기반으로 한 사무직 노동조합들을 통해 노동운동에 도입되었다. 이들은 중간계급 지식인과 학생층에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탈산업화와 노동조합 통합의 과정에서, 이들 집단은 기존 노동자들을 밀어내고 주도권을 잡았다. 더욱 중간계급적인 성향을 띠고, 언변이 좋은(혹은 적어도 더 큰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유행하는’ 사상을 노동운동에 퍼뜨릴 수 있었고, 이는 하나의 당연한 규범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현상은 여러 나라의 노동조합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쳤다. 그 결과 여성, LGBTQ+, 흑인, 장애인, 그리고 그 밖의 여러 집단을 위한 할당 의석이 만들어졌다. 또한 이들은 각각 별도의 회의, 위원회 등을 갖추고 있으며, 그 안에서 저마다의 소규모 관료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서는 오직 자신들만이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노조 내 다른 관료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한, 그들은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영역(fiefdoms)을 운영하는 것을 허용받는다. 좌파 개혁주의자들과 종파주의자들 역시 이러한 상황을 수용하는데, 이는 그들의 사상과 정책 또한 소부르주아적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에 대한 반발
중산층 여성들은 은행가, CEO, 주교, 심지어 미국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경력의 길로 나아가고자 열망하고 있다. 이것은 개량주의자들의 오래된 노래를 새로운 방식으로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즉, “나는 노동계급의 처우 개선을 지지한다. 단, 나 자신부터 시작해서 말이다.”라는 식의 태도 말이다.
여성이 은행 이사회에 진출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여성 노동자들의 권익 향상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여성 경영자가 남성 경영자보다 직원들에게 더 친절한가? 지금까지의 기록은 그런 기대를 뒷받침하지 않는 것 같다. 또한 마거릿 대처, 앙겔라 메르켈, 테레사 메이의 성공이 공장 현장에 있는 그들의 ‘자매’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도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정치적 의식을 가진 여성들 사이에서 점점 더 많은 이들이 페미니즘의 부정적인 측면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본주의를 착취적이고 억압적인 체제로 간주하여 이에 맞서기보다는, 소위 ‘린 인(lean-in) 페미니즘’이 여성들에게 운동을 오직 특정 여성층의 개인적 성공과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만 바라보도록 부추긴다는 점을 깨닫고 있다.
제사 크리스핀은 자신의 저서 『그래서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Why I Am Not a Feminist)』에서 페미니즘을 CEO와 뷰티 기업들이 대중화시킨, 철저히 자기 이익을 좇는 브랜드이자 ‘힘없고 가난한 이들을 억압하는 일에 여성도 동등하게 가담할 수 있도록 하는 싸움’이라고 규정했다. 꽤 설득력 있는 지적이지만,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은, 책의 제목에도 불구하고, 제사 크리스핀이 여전히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뉴요커』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그래서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는 미국 내 자유주의 성향 여성들 사이에서 중대한 인식의 전환이 일어날 준비가 된 듯한 시점에 등장했다. 크리스핀(Crispin)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들은 ‘가부장적 자본주의에서의 성공 척도인 돈과 권력’을 신성시하지 않는 새로운 신념 체계로 갑작스럽게 마음을 기울이고 있다. 여성 CEO의 수보다는 저소득층 여성의 삶에 더 관심을 두는 페미니즘에 대한 갈망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페미니즘이 자본주의와 단순히 양립 가능한 수준을 넘어, 오히려 자본주의 덕분에 힘을 얻는다는 반대 견해 또한 상당한 주목을 받아왔다. 지난 10년 동안 자칭 페미니스트 롤모델이라 자처하는 대다수가 전파해 온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었다. 즉, 페미니즘이란 개별 여성이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돈을 갖게 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크리스핀은 이러한 유형의 페미니즘을 가차 없이 해부한다.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이는 단순히 돈으로 억압에서 벗어난 뒤 그 억압을 영속화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또한 이는 ‘타인을 자신의 의지대로 복종시키는 것’에 기반을 둔 가부장적 행복 모델을 수용하는 것이기도 하다. 크리스핀은 수 세기 동안 착취당해 온 여성들이 무의식적으로 타인을 착취하려는 욕구를 갖게 되었다고 본다. ‘일단 우리가 그 체제의 일원이 되어 남성과 동등한 수준으로 혜택을 누리게 되면, 집단으로서 우리는 누가 상처를 입게 될지 따위는 신경 쓰지 않게 될 것이다’.”
페미니즘의 위기는 특히 도널드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 정치가 사회주의와 반(反)자본주의 방향으로 급격히 좌경화되는 흐름 속에서 그 양상이 드러나고 있다. 정체성 정치의 반동적 성격은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명백히 폭로되었다. 당시 월스트리트와 억만장자 계급을 가장 완벽하게 대변하던 인물인 힐러리 클린턴은 여성들에게 ‘내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에게 투표해 달라고 호소했기 때문이다.
강경한 반동주의자이자 전쟁광인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은 뉴햄프셔에서 열린 행사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소개하며 청중과 유권자들을 향해 “서로 돕지 않는 여성들을 위한 지옥의 특별한 자리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수백만 명의 미국 여성들은 이러한 ‘젠더 정치’에 호소하는 주장을 거부하고 클린턴과 올브라이트에게 등을 돌린 채 샌더스를 지지했다. 이는 ‘정체성 정치’ 옹호자들에게 뼈아픈 일격이었다.
이는 미국 여성들이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에게 투표할 때 후보의 성별보다 그 정책과 구상을 훨씬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판단은 지극히 타당한 것이었으나, 당시 그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대안이 ‘반(反)기득권’ 후보를 자처하며 선동적인 행태를 보인 극우 반동주의자 도널드 트럼프였다는 점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만약 버니 샌더스가 대선 후보로 출마했다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투표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우리가 옹호하는 유산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여성 문제를 경시하거나 무시한다는 비난을 받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처음부터 자신들의 강령에 보통선거권을 명시했다. 이는 서프러제트(역자: 여성 참정권 운동) 이전의 일이었다. 엘리너 마르크스는 영국 노동조합 운동에서 여성의 동일임금을 위해 투쟁했다. 또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미 1848년에 부르주아 가족제도의 폐지를 요구했다. 물론 그들은 이러한 변화가 하루아침에 실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1917년 러시아에서 권력을 잡은 직후, 볼셰비키당은 역사상 가장 포괄적인 여성 해방 프로그램을 실행에 옮겼을 뿐만 아니라 동성애를 비범죄화했는데, 이는 당시 자본주의 세계에서 볼 수 있었던 그 어떤 조치보다도 훨씬 진보적인 것이었다. 볼셰비키는 자본주의 타도가, 억압에 관한 추상적이고 공허한 논의가 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실질적인 보장을 여성과 동성애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음을 행동으로 입증해 보였다.
트로츠키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혁명은 소위 ‘가정의 난로’—노동계급 여성이 어린 시절부터 죽을 때까지 노예와도 같은 가사노동을 수행해야 하는 시대착오적이고 답답하며 정체된 제도—를 파괴하기 위해 영웅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계획에 따르면, 폐쇄적인 소규모 경제 단위로서의 가정은 사회적 돌봄과 편의 시설의 완비된 체계가 대체해야 했다. 산부인과 병원, 탁아소, 유치원, 학교, 공동 식당, 공동 세탁소, 응급 진료소, 병원, 요양소, 체육 단체, 영화관 등이 그것이다. 가족이 담당하던 가사 기능을 사회주의 사회의 제도들이 완전히 흡수하고 모든 세대가 연대와 상호부조 속에서 결합하게 될 때, 여성은 물론 사랑하는 두 사람의 관계 역시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속박으로부터 진정한 해방을 맞이하게 될 것이었다.
“(…) 그러나 낡은 가족제도를 단숨에 무너뜨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의지가 부족해서도, 혹은 가정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너무나 깊이 뿌리박혀 있어서도 아니었다. 오히려 정부와 그곳이 운영하는 탁아소, 유치원 등의 시설에 대해 초기에 잠시 불신을 보였던 여성 노동자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보다 선진적인 농민들까지도, 집단적 보육과 가족경제의 사회화가 가져다주는 엄청난 이점을 깨닫게 되었다. 불행히도 사회는 지나치게 빈곤했고 문화적 수준 또한 충분히 높지 못했다. 국가가 실제로 보유한 자원은 공산당의 계획과 의도를 뒷받침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가정은 단순히 ‘폐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대체해야 하는 것이다. ‘보편적 빈곤’의 토대 위에서는 여성의 진정한 해방을 실현할 수 없다. 마르크스가 80년 전에 정립했던 이 냉혹한 진실을 경험은 곧 입증해 주었다.” (『배신당한 혁명』, 제7장)
다시 한번 이론의 중요성에 대하여
그렇다면 국제마르크스주의경향은 어떤 이론을 옹호하는가? 무엇보다도 우리는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트로츠키의 사상을 기초로 한다. 이 사상들은 역사 속에서 검증을 거쳤으며, 21세기의 세계에서도 여전히 완전히 유효하고 타당하다. 우리는 제1인터내셔널의 사상과,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의 첫 네 차례 대회에서 채택된 문서들(스탈린주의적 타락이 시작되기 이전), 그리고 트로츠키의 『이행기 강령』을 옹호한다. 또한 이러한 사상들은 트로츠키 사후 수십 년 동안 테드 그랜트의 저작들을 통해 더욱 발전되고 보완되었다. 그의 저작들 역시 우리의 이론적 유산을 이루는 근본적인 구성 요소이다.
최근 조직에 합류한 동지들 중 일부가 아직 마르크스주의 사상을 완전히 숙지하지 못한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이는 분명 시간이 걸리는 문제이며, 그 자체로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대열 내에 존재하는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와는 동떨어진 그릇되고 이질적인 소부르주아적 일탈에 대해 아주 사소한 양보라도 한다면, 이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만약 어떤 학생이 우리 조직에 가입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우리 조직에 온 것을 진심으로 환영하지만, 이는 당신이 노동계급의 관점과 시각을 받아들이고 마르크스주의를 연구하는 데 헌신할 의지가 있을 때에 한한다. 부디 기존의 편견은 문밖에 두고 오라.
마르크스는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1879년 9월 17~18일)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다른 계급 출신의 이런 사람들이 프롤레타리아 운동에 합류한다면, 그 첫 번째 조건은 그들이 부르주아나 소부르주아적 편견의 잔재를 조금도 가져오지 말고 프롤레타리아적 관점을 전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트로츠키주의 운동은 과거에 이러한 사례를 수없이 겪어왔다. 1930년대 트로츠키의 훌륭한 조언을 무시했다가 완전히 타락해버린 미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의 사례만 보더라도 이는 명백하다. 그들은 학생 운동권의 분위기에 휩쓸려 계급적 입장을 저버렸고, 페미니즘이나 흑인 민족주의 등 당시 유행하던 소부르주아적 사상을 모두 수용했으며, 결국 오늘날과 같은 개탄스러운 처지에 이르고 말았다.
우리는 국제마르크스주의경향 내에서 이와 같은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조직 전체를 대상으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우리 대열 안에서 이러한 경향이 조금이라도 엿보이거나 아주 사소한 양보라도 이루어지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조직 내에 그러한 소부르주아적 사상이 유입되도록 내버려 둔다면, 노동계급을 사회주의 혁명의 대의로 결집시킬 수 있는 진정한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세력으로서의 조직은 결국 파괴되고 말 것이다.
레닌은 엥겔스, 마르크스, 트로츠키처럼 이질적인 사상, 특히 급진적 소부르주아지의 사상을 공격할 때 결코 말을 에둘러 하지 않았다. 우리는 레닌, 로자 룩셈부르크, 클라라 체트킨이 페미니즘 문제에 대해 쓴 글들을 다시 출판해야 한다. 그들은 이 문제에 대해 매우 명확하게 입장을 밝혔다. 우리는 교차성 이론을 비롯한 모든 형태의 ‘정체성 정치’에 대한 반대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혀야 한다. 이는 명백히 반혁명적인 경향을 나타낸다. 이 문제에 있어서는 어떠한 모호함도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가능한 한 가장 명확하고 단호한 방식으로 우리의 입장을 밝혀야 한다.
우리는 학생들을 조직에 영입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것은 소부르주아적 사상과 철저히 단절하고, 노동계급의 관점을 확고히 자신의 입장으로 삼을 준비가 되어 있는 학생들이어야 한다. 학생 동지들은 노동계급을 향해야 하며, 공장과 노동자 주거지, 그리고 노동운동 내의 노동조합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모든 학생 동지는 적어도 한 명의 청년 노동자를 조직으로 이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1932년 11월, 트로츠키는 다음과 같이 썼다.
“혁명적 학생이 기여할 수 있는 길은 오직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될 때뿐이다. 첫째는 철저하고 일관된 혁명적 자기 교육 과정을 거치는 것이고, 둘째는 학생 신분일 때 혁명적 노동자 운동에 합류하는 것이다. 아울러 분명히 해두자면, 내가 말하는 이론적 자기 교육이란 왜곡되지 않은 마르크스주의를 학습하는 것을 의미한다.” (트로츠키, 『학생과 지식인에 대해』, 1932년 11월)
학생 동지들을 프롤레타리아화하는 길은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대한 철저한 토대를 제공하는 것이다. 많은 학생이 부패한 학계 환경에서 습득한 혼란스러운 관념들을 지니고 있다. 우리의 과제는 이러한 잘못된 관념들을 가능한 한 빨리 바로잡는 것이다. 이는 온건하고 조심스러운 태도로는 달성할 수 없다.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진지한 학생일수록 직설적인 비판에 기분 나빠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존중한다. 거침없는 논쟁을 감당하지 못하는 이들이 불쾌감을 느끼는 것은 우리의 ‘어조’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들이 자신의 소부르주아적 관념과 편견을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는 견고하고 이념적으로 동질적인 조직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수십 년에 걸쳐 핵심 간부들에게 엄격한 마르크스주의 이념 교육을 실시한 결과이다.
그러나 방법상의 사소한 실수나 잘못된 구호 및 표현이 더 심각한 문제로 발전할 수 있다. 레닌의 표현을 빌리자면, “작은 찰과상 하나가 괴저를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논쟁(polemics)을 적극 활용하여 정치적 수준과 이해를 높여야 하며, 이를 통해 인터내셔널을 견고한 토대 위에 건설해야 한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수십 년간 지속된 경제 성장은 노동계급 대중 조직의 전례 없는 퇴보를 초래했다. 이로 인해 혁명적 흐름은 고립되었고, 어디서나 소수파로 전락했다. 우리는 이러한 조건 속에서 필연적으로 흐름을 거슬러 헤엄치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러나 우리의 진정한 사상과 방법, 전통을 명확히 정립하는 과정은 결코 쉽거나 투쟁 없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 과정은 일련의 분열을 통해 나타났다. 이러한 선별 과정은 국제마르크스주의경향을 약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비약적으로 강화시켰다. 기회주의적이고 수정주의적인 경향과 급진적으로 결별하는 것이야말로 미래 성공을 위한 전제 조건이었다. 레닌이 설명했듯이, “우리가 단결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단결할 수 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분명하고 확고한 경계선을 그어야 한다.”
좌파 진영에서 오직 국제마르크스주의경향만이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진지하게 대하고 있다. 간부들에 대한 이론적 훈련은 우리의 가장 근본적이고 시급한 과제 중 하나이다. 이것이야말로 노동계급에 뿌리내린 강력한 마르크스주의 경향을 건설하기 위한 토대이다.
2018년 7월 27일, 이탈리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