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온 트로츠키의 『과도기 강령』은 마르크스주의의 걸작이며, 그 가르침은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큰 의미를 지닌다. 우리 시대와 같은 자본주의의 위기의 격동기에 쓰인 이 책에서 트로츠키는 마르크스주의의 전술과 방법론을 살아있는 계급 투쟁과 연결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웰레드 북스에서 출간된 『 마르크스주의 고전』 1권 2판 서문에서 프레드 웨스턴이 오늘날 혁명적 공산주의자들에게 있어 이행기 강령의 역사적 중요성을 설명하는 부분을 발췌하여 게재한다.
트로츠키의 과도기 강령 과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의 귀중한 저서 세 권을 함께 수록한 『마르크스주의 고전 1권』은 여기에서 구입 가능하다.
우리는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격동적인 시기를 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빈곤율은 증가하고 있으며, 동시에 소수의 '상위 1%'는 전례 없는 규모의 부를 축적하고 있다.
고용주들이 노동자의 권리를 조금씩 침해하며 근무 환경은 악화되고 있고, 임금은 물가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며,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 혜택은 끊임없이 삭감되고 있다. 주택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반면, 임대료는 많은 노동자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되어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기후 위기는 홍수부터 산불까지 수많은 국가에서 재앙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가뭄은 수백만 명의 생계를 파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국주의 열강들은 시장과 영향권을 놓고 서로 갈등하며 지구상의 모든 국가의 내정에 간섭하고 있다. 이는 불안정과 혼란, 전쟁과 내전을 야기하고 있다.
이로 인해 전 세계 수백만 명, 아니 수십억 명의 사람들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원인은 무엇인지, 해결책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혁명적 공산주의자들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명확한 해답과, 위기의 근본적 원인을 해결함으로써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강령을 보유하고 있다.
제4인터내셔널
이 강령은 무엇이며, 노동계급의 일상적인 투쟁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들은 레온 트로츠키가 1938년에 저술하고 새로 결성된 제4인터내셔널의 첫 번째 대회에서 채택된『이행기 강령』에서 매우 능숙하게 다루어진다. 트로츠키는 레닌과 함께 1917년 10월 혁명을 통해 볼셰비키당과 노동계급을 이끌고 권력을 장악했다.
레닌과 트로츠키 모두 한 나라 안에서, 특히 당시 극도로 낙후된 러시아의 상황에서는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의식적으로 혁명을 국제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과거의 제2인터내셔널은 여러 개혁파 정당으로 변질되었는데, 이들은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자신들의 지배 계급을 지지함으로써 노동계급을 배신했다.
레닌과 트로츠키는 훗날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또는 '코민테른'으로 알려지게 된 제3인터내셔널 창설을 위해 부지런히 노력했다. 그 산하의 각국 지부인 다양한 공산당들은 각 나라의 노동계급에게 필요한 혁명적 지도력을 제공하기 위해 창설되었다.
불행히도 1918년 독일 혁명을 시작으로 이어진 연이은 혁명에서 공산당은 사건들에 영향을 미칠 만큼 영향력이 크지 않았거나, 직면한 막중한 과제를 수행할 이론적 준비가 충분히 되어있지 않았다.
이러한 패배는 소련의 고립을 초래했다. 여기에 러시아 내전의 참화로 더욱 악화된 러시아의 경제적 낙후가 더해지면서 소비에트 공화국은 점차 쇠퇴의 길을 밟았다. 권력은 스탈린을 중심으로 한 특권 관료 집단에 의해 장악되었다.
1924년 레닌 사망 이후 이 과정은 급속도로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트로츠키는 10월 혁명의 이상, 즉 1917년 이후 초기의 진정한 노동자 민주주의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좌익 반대파를 결성했다.
권력을 키워가는 관료 세력과 좌익 반대파 지지자들 사이에 갈등이 벌어졌다. 트로츠키는 결국 1926년 정치국에서 축출되었고, 1928년 망명길에 올랐다.
코민테른은 여러 나라에서 혁명 운동을 이끄는 데에 실패하며 점차 세계 혁명의 도구에서 소련 지배 관료제의 외교 정책 도구로 변질되었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1933년 히틀러의 승리였다. 독일 공산당과 코민테른 지도부는 파시즘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나치의 부상을 공산주의자들이 권력을 잡을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는 과정으로 오인했지만, 파시즘의 진정한 목적은 독일 노동계급을 완전히 분쇄하는 것이었다.
이로써 히틀러는 단 한 발의 총성도 없이 권력을 잡고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노동자 운동 중 하나를 진압할 수 있었다.
코민테른이 건강한 인터내셔널이였다면 이처럼 참담한 패배는 격렬한 논쟁과 내부 투쟁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그러나 관료집단의 잘못된 노선은 코민테른 전역에서 거의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여졌다.
트로츠키는 이로써 코민테른이 진정한 혁명 조직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고 선언하며, 제4인터내셔널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리더십의 위기
『 이행기 강령』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 공산당 선언』과 마찬가지로, 작성 당시보다 오늘날에 더 적절해 보인다는 것이다.
서두에 나오는 “세계 정치 상황 전체는 주로 프롤레타리아 지도력의 역사적 위기로 특징지어진다.”라는 말은 현 시대에 국제 노동자 운동 전체가 직면한 교착 상태를 적절하게 묘사한다.
오늘날 노동계와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타락 수준은 전례가 없을 정도이다.
이로 인해 노동계급은 지도자들을 잃게 되었다. 우익 포퓰리스트 선동가들이 지지를 얻고 마치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것처럼 행세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책임은 소위 노동계급의 ‘지도자’라고 불리는 자들에게 있다.
어느 곳에서나 노동계급의 개량주의 지도부는 자본주의 질서에 완전히 굴복했다. 영국의 노동당 지도부는 자유주의 부르주아 기득권층의 단순한 부속물로 전락하여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충실히 대변하고 있다.
독일 사회민주주의 지도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이탈리아의 전 스탈린주의자들은 공산당을 해산한 뒤 민주당을 창당했는데, 이 당의 지도부는 사고방식과 강령 모두 철저히 부르주아적이다.
미국에서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지배계급에 꼼짝없이 묶여 있으며 이러한 상황은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회주의냐 야만이냐
트로츠키의 글은 오늘날 자본주의가 직면한 위기를 묘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인류의 생산력은 정체되고 있다. 새로운 발명과 개선조차 물질적 부의 수준을 높이지 못하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 전체의 사회적 위기 속에서 발생하는 경제 위기는 대중에게 더욱 심각한 궁핍과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실업률 증가는 국가의 재정 위기를 심화시키고 불안정한 통화 시스템을 더욱 약화시킨다.”
그리고 다시:
“부르주아지 스스로도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 이제 그들은 눈을 감고 경제적, 군사적 재앙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당시 그는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사회주의 혁명이 없다면, 다음 시대에 인류 문화 전체가 재앙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 재앙은 55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2차 세계 대전, 홀로코스트의 참상, 그리고 수많은 국가를 휩쓴 전반적인 파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오늘날 우리가 당장 세계 대전에 직면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지역 전쟁, 내전, 무장 반란, 테러 공격 등이 발생하며 많은 지역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현재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는 다시 한번 우리로 하여금 사회주의냐 야만이냐의 선택의 기로에 서 있게 한다고 할 수 있다. 야만의 요소는 이미 전쟁과 내전, 세계 곳곳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기근, 그리고 심화되는 빈곤과 그로 인한 폭력과 범죄에서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또한 여러 나라에서 일어난 대규모 계급 투쟁과 혁명 속에서 사회주의의 잠재력을 목격해 왔다. 2011년 아랍의 봄부터 스리랑카(2023년), 방글라데시(2024년), 그리고 오늘날 네팔과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난 혁명적 격변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프로그램(강령)의 필요
가장 중요한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어떻게 하면 대중 운동을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자본주의를 성공적으로 전복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혁명적 공산주의자들의 강령이 대중의 강령이 될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이행기 강령』의 핵심이다.
트로츠키는 1938년 3월 미국 트로츠키주의 지도자들과의 회담에서 그 목표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추상적인 공식에 매몰되지 않고 , 구체적인 행동 강령과 요구 사항을 개발해야 한다. 이러한 이행기적 강령은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의 조건에서 비롯되지만, 자본주의의 한계를 뛰어넘을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요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이행적이며, 대중의 요구가 미래 프롤레테리아 정부의 요구로 전환된다는 점에서 결과적이다.”
“우리는 프롤레타리아의 일상적인 요구에만 머물러서는 안된다. 가장 후진적인 노동자들에게도 그들의 필요에 부합하고, 변증법적인 권력 쟁취로 이어지는 구체적인 슬로건을 제시해야 한다.”
핵심은 혁명적 당이 노동계급이 직면한 문제, 즉 인플레이션, 저임금, 장시간 노동, 비싼 주택 비용, 의료비, 교육 등과 같은 문제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허나, 여기서 멈춰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이 강령은 사회주의의 '최대 강령'과 동떨어진, 과거 제2인터내셔널의 전형적인 '최소 강령'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며, 우리는 개량주의의 늪에 빠져버릴 것이다.
혁명적 당은 노동계급이 직면한 문제에서 출발하여 해결책을 제시하는 요구를 제기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요구들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동계급이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는 필요성과 항상 연결시켜야 한다.
자본주의를 사회주의 혁명으로 전복하는 것은 노동자 대중과 동떨어진 소규모 조직에 의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해해야 하며, 이 막대한 역사적 임무 또한 대중 스스로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마르크스는 “노동계급의 해방은 노동계급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라고 설명했으며, “이론은 대중을 사로잡는 순간 물질적 힘이 된다.”라고도 설명한 바 있다.
혁명적 의식
오직 노동계급만이 사회를 변혁할 수 있는 계급이며, 자신들 앞에 놓인 과제를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 또한 노동계급이 단숨에 혁명적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노동계급은 직장에서의 당면한 요구를 둘러싼 투쟁에 나서며, 혁명적 공산주의자들은 바로 그곳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요구들에만 우리 자신을 한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노동자들의 투쟁에 어깨를 나란히 하며 참여한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장기적으로 볼 때 노동자들이 문제에 대한 영구적인 해결책을 찾는 것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바로 자본주의라는 점을 항상 강조한다.
사회주의 혁명의 최종 승리는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노동계급이 매일같이 벌이는 투쟁 없이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노동계급은 바로 이러한 투쟁을 통해 자신들이 맞서 싸우는 체제의 진정한 본질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시간이 흐르고 수많은 경험을 거치면서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이나 주당 노동 시간 단축과 같은 개량과 쟁취가 자본주의 체제 전체를 제거하지 않고서는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할 것이다.
혁명적 공산주의자들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 분파적이거나 극좌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 이는 우리가 노동자 대중과 거리를 두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아직 사회 혁명과 자본주의 체제 전복의 필요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노동계급의 일시적 무지를 경시하지 않는다.
공산주의자들은 노동계급 대중이 경험을 통해 배운다는 것을 이해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노동자들의 일상적인 투쟁에 참여하고, 그들의 투쟁을 직접 경험한다. 그리고 각 단계에서 노동자들이 도출한 결론들을 바탕삼아, 이를 통해 전반적인 이해 수준을 높인다.
동시에 우리는 현 체제에 어떠한 환상도 심지 않고, 오히려 대중의 눈앞에 자본주의의 실체를 드러낸다.
요구 사항
『 이행기 강령』은 각국의 구체적인 상황을 고려하여 서로 다른 상황에 적용되는 요구 사항들을 담고 있다. 이 강령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 즉 노동자들이 대규모 공장에 집중되어 있는 산업화된 국가의 조건에도 적용되는 요구 사항들을 포함한다.
아울러 『 이행기 강령』은 산업 발달이 덜 진행된 국가들, 그리고 인구의 상당 부분이 여전히 농촌 생활을 하는 국가들에 대한 요구 사항 역시 제기한다. 또한, 민주주의적 구호가 대중을 동원하는 데에 유용한 역할을 할 수 있는 파시스트 정권에 적용되는 구체적인 요구들 역시 제시하고 있다.
심지어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이 정치 권력을 장악했던 소련에 대한 부분도 포함되어 있다. 트로츠키는 '정치 혁명'의 필요성을 제기했는데, 이는 1917년 10월 혁명의 성과, 즉 중앙화된 계획 경제를 유지하면서 노동계급이 권력을 되찾는 혁명만이 사회를 진정한 공산주의로 이끌어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주장했다.
이행기적 요구의 본질은 노동계급의 문제와의 직접적인 관련성에 있다.
예를 들어, 인플레이션이 만연한 상황에서는 슬라이딩제(sliding scale of wages: 노동자의 구매력을 유지하기 위해 물가상승률에 맞춰 임금을 인상하는 제도 – 역자)를 도입하라는 요구는 낮아지는 노동계급의 구매력에 대한 일시적인 해답일 수 있다. 노동시간 슬라이딩제, 혹은 오늘날 말로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 요구는 일자리 축소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다. 일자리가 없다면 일자리를 나누면 되지 않겠는가!
허나, 이행기적 요구들은 노동계급이 당면한 문제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러한 요구들을 쟁취하고 유지하려면 노동계급은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전체 체제를 전복해야 한다는 과제를 스스로에게 부여해야 하며, 노동계급이 이 결론을 내리도록 도와주는것이 전위당의 과제이다.
개량주의를 넘어서
수십 년 동안 자본주의 체제의 점진적인 개혁이 가능하다는 환상이 노동 운동을 지배해 왔다. 그러나 이제 그 환상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자본가 계급은 그동안 누적된 전례 없는 수준의 부채를 줄이기 위해 노동계급에게 고통스러운 긴축 정책을 강요했다.
이러한 정책의 영향은 한 가지 통계로 요약할 수 있다. 2009년 이후 유럽 연합 전역에 적용된 긴축 조치로 인해 유럽 시민 평균의 실질 구매력은 3,000유로 감소했으며, 유럽 전역에서 실질 가처분 소득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자본의 압박은 가차없었다. EU 회원국들이 모두 서명한 조약에 따라 정부 부채 대비 GDP 비율을 60%로 달성하려면 2070년까지 매년 공공지출의 2%를 삭감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이는 향후 두세 세대에 걸쳐 지속될 긴축 정책을 의미한다. 이는 임금의 실질 구매력의 상당한 하락뿐만 아니라 의료, 교육, 공공주택, 연금 등, 문명화된 삶을 구성하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대한 첫 번째 반응은 대략 2014년에서 2015년경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스페인에서 포데모스와 같은 새로운 정치 세력이 등장하고, 그리스의 시리자처럼 과거 소수 정당이었던 정당들이 인기를 얻으며, 영국의 노동당은 급격히 좌경화되어 제러미 코빈(Jeremy Corbyn)이 당 대표가 되는 등의 변화가 나타난 시기였다. 또한 미국에서는 버니 샌더스와 같은 인물이 ‘억만장자 계급’에 맞서는 ‘정치 혁명’을 외치며 큰 인기를 얻었다.
불행히도, 이러한 인물들과 정권들은 여러모로 그들을 바라보던 수백만 명의 노동자와 청년들을 크게 실망시켰다. 그리스에서는 시리자 지도부가 정부를 구성한 뒤, 대중이 반대했던 바로 그 정책들을 그대로 시행해 나갔다.
스페인에서는 포데모스가 연립정부에 참여하여 동일한 정책을 시행했으며, 영국 노동당 우파의 조직적인 공세에 직면한 제러미 코빈은 반격할 생각도 없이 당의 ‘단결’을 위해 꼬리를 내렸다. 미국에서는 샌더스가 민주당 기득권층에 완전히 굴복했다.
이는 광범위한 실망감을 불러일으켰다. 허나 동시에, 특히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일어났으며 이것이 바로 공산주의가 청년층 사이에서 인기를 얻게 된 이유이다.
주류 언론이 공산주의는 죽었으며, 마르크스주의는 오늘날 세계와 무관한 과거의 유물이라는 생각을 퍼뜨리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년층의 다수가 자본주의를 문제의 근원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사회가 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한다.
혁명적 공산주의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많은 노동자와 청년들이 현재의 위기에 대한 유일하고 합리적이며 과학적인 설명, 즉 과학적 사회주의, 다시 말해 마르크스주의 사상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사회 형태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모든 시도에도 불구하고, 가장 앞서 나가고 사고력이 뛰어난 청년층과 노동계급으로 하여금 혁명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도록 부추기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이다.
카를 마르크스는 “철학자들은 세상을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했을 뿐이다. 허나,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여기서 마르크스는 철학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다. 마르크스주의 역시 철학적 관점 중 하나이다. 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우리가 세상을 해석하고 분석하는 데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적극적으로 투쟁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혁명적 공산주의의 본질이다.




